장을 보러 갔다가 로봇을 산다. 한때는 공상과학 영화 속 장면처럼 여겨졌던 일이 이제는 현실이 되고 있다. 로봇은 더 이상 공장이나 연구소 안에만 머무는 기술이 아니다.
소비자의 생활 공간으로, 그리고 일상의 소비 품목으로 로봇에 천천히 스며들고 있다.
이마트는 올해 1월 30일 일렉트로마트 영등포점에 ‘로봇 스토어’를 열고 휴머노이드 로봇을 포함한 14종의 로봇 상품 판매를 시작했다. 국내 대형마트가 로봇을 생활 가전처럼 진열하고 판매한 건 처음이다. 5월 17일 기준 누적 판매량은 1400여대를 넘어섰다.
가장 주목받는 제품은 3100만원짜리 휴머노이드 로봇 ‘G1’이다. 유니트리가 만든 제품으로, 걷고 앉고 일어나는 기본 동작은 물론 사람과 유사한 움직임까지 구현한다. CES 2026에서 복싱 시연으로 화제를 모으며 대중적 관심을 끌었다.
아직은 ‘사는 사람보다 구경하는 사람이 더 많은’ 제품에 가깝지만, 중요한 건 가격표가 붙은 상태로 마트 진열대에 등장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일상으로 들어온 로봇
더 흥미로운 건 단순히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닌 실제 판매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건 수천만원대 휴머노이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낮은 반려형 AI 로봇으로 나타났다.
이마트에 따르면 8만원대 ‘에일리코 AI 반려키링로봇’은 600여대, 17만원대 ‘에일릭 AI 반려로봇’은 300여대 판매됐다. 두 제품만 전체 판매량의 65% 이상을 차지했다.
로봇이 이제 ‘미래 기술’이 아닌, 생활형 디바이스로 받아들이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저가 로봇 이외에도 72만원대 루나AI 반려로봇, 15만원대 AI 바둑보드, 돌봄 케어로봇 같은 제품들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특히 일부 제품은 영등포점 테스트를 거쳐 전국 일렉트로마트 매장으로 판매가 확대됐다. 실험적 전시가 아니라 실제 유통 상품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476만원에 육박하는 '4족 보행 로봇'도 7대가 판매됐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생산용 로봇'에서 '생활 가전'으로
이 변화는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글로벌 시장 역시 로봇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골드만삭스는 2035년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를 380억달러로 전망했다. 불과 1년 전 제시했던 60억달러 전망치보다 6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AI 기술 발전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라졌기 때문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30년 연간 휴머노이드 로봇 출하량이 120만대에 달하고, 평균 가격은 1만7000달러 수준까지 내려갈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3000만원이 넘는 휴머노이드가 몇 년 뒤에는 자동차나 프리미엄 가전처럼 접근 가능한 가격대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역시 2025년 전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설치 대수를 약 1만6000대로 추산하며, 2027년에는 10만대 규모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직은 제조·물류 현장 중심이지만, 시장은 이미 일상 진입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로봇 산업은 공장 자동화나 물류 효율화를 위한 기업용(B2B) 시장 중심이었다. 하지만 최근 흐름은 다르다. 로봇이 소비자용(B2C) 제품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번 이마트의 실험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로봇 산업의 무게 중심 변화 자체를 보여주는 장면에 가깝다.
이미 로봇과 살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휴머노이드 로봇은 비싸고 낯선 기술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완전한 로봇 시대’가 아니라, 사람들이 로봇을 거부감 없이 소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8만원짜리 AI 키링 로봇 600대가 말해주는 건 기술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로봇에 대한 '익숙함'이라는 뜻이다.
로봇은 어느 날 갑자기 일상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반려기기와 생활형 디바이스의 형태로, 사람들 사이에 천천히 스며들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