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음악으로 완성한 새로운 독서 경험
요즘 책을 즐기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권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전시를 둘러보듯 공간을 경험하거나 음악을 함께 들으며 작품에 몰입하는 등 독서를 하나의 경험으로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책을 단순히 진열하는 대신 공간과 큐레이션, 음악을 통해 새로운 독서 경험을 제공하는 전시도 늘고 있다.
이 같은 독서 문화를 직접 경험해보기 위해 서울 송파구 서울책보고에서 열리고 있는 2026년 여름 기획전 '장면 너머의 세계'를 찾았다.
현실 너머의 세계를 만나는 SF 큐레이션
이번 기획전은 '현실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주제로 SF 소설과 영화 원작 소설, 대본집 등을 한자리에 모았다. 책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객이 공간을 따라 이동하며 하나의 세계관을 경험하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팸플릿을 손에 들고 안내에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첫 번째 서가 앞에는 '미지 탐험가를 위한 안내서'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책장에는 국내외 SF 소설들이 진열돼 있었는데, 익숙한 작품도 있었지만 처음 접하는 책도 적지 않았다. 평소 SF를 즐겨 읽지 않는 사람이라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길 만큼 다양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는데, 알고 보니 이 책들은 그냥 무작위로 모은 것이 아니었다.
여섯 작가가 고른 '새로운 세계'
진열된 SF 소설들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소속 여섯 작가가 직접 추천한 작품들이었다. 듀나, 문목하, 문지혁, 심너울, 정세랑, 청예 등 한국 SF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고른 작품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베스트셀러를 모아놓은 전시가 아니라 작가들이 직접 읽어보길 권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평소 SF를 접해보지 않았거나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된다면, 작가들의 추천을 따라 작품을 골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시 펼친 '저주토끼', 공포보다 오래 남은 상상력
추천 도서 가운데 호러와 SF, 판타지를 넘나드는 ‘저주토끼’를 다시 펼쳐봤다. 예전에 읽었던 작품이지만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와 독특한 상상력은 여전했다. 담담한 문체 속에 기이한 사건들이 이어지며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냈고, 잠시 읽었을 뿐인데도 다시 끝까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음악이 만났더니 몰입감이 달라졌다
이번 기획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단연 '듣고 읽고 몰입하는 독서 경험' 코너였다. 관람객은 헤드폰을 착용한 뒤 김보영 작가와 박찬욱 감독이 추천한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함께 비치된 책을 읽을 수 있다. 안내문에는 "장면과 음악, 이야기가 겹쳐지는 순간 더 깊은 몰입의 세계가 펼쳐진다"고 적혀 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추천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영화 '어쩔 수가 없다' 각본집을 읽어봤다. 플레이리스트에는 실제 영화에 삽입된 음악도 포함돼 있어 자연스럽게 영화의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이미 본 영화였지만 각본집으로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평소라면 대사를 중심으로 읽었을 텐데, 음악이 함께 흐르자 인물의 행동과 장면, 공간의 분위기에 더 집중하게 됐다. 글을 읽기보다 영화의 한 장면을 직접 마주하는 듯했다.
전시와 함께 즐기는 독서
기획전을 둘러본 뒤에는 전시에서 눈에 띄었던 SF 책 한 권을 골라 직접 읽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서울책보고 곳곳에는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좌석이 마련돼 있어 전시의 여운을 이어가기 좋았다. 단순히 전시를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 생긴 작품을 바로 펼쳐볼 수 있다는 점이 이 공간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아쉬웠던 단 하나의 몰입 공간
전체적으로 기획전의 주제와 큐레이션은 만족스러웠다. 다양한 SF 소설과 영화 원작 소설, 대본집을 통해 '현실 너머의 세계'라는 콘셉트를 잘 살려냈고, 평소 접하지 않았던 작품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하는 구성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기획전 소개문에는 "한 장면에서 또 다른 세계로 확장되어 가는 경험, 가볍게 펼쳤다가 끝까지 빠져들게 되는 여름의 몰입 독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 관람객이 몰입형 독서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헤드폰을 활용한 코너가 사실상 유일했다. 책과 음악을 결합한 체험이 인상적이었던 만큼, 이 같은 몰입형 콘텐츠가 한두 곳 더 마련됐다면 '장면 너머의 세계'라는 전시의 콘셉트가 더욱 선명하게 전달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올여름, 색다른 독서를 경험하고 싶다면
SF 장르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부담 없이 둘러보기 좋은 기획전이다. 전시를 본 뒤 관련 도서를 직접 읽어보며 작품의 세계를 더 깊게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올여름 색다른 독서 경험을 찾고 있다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서울책보고 여름 기획전 '장면 너머의 세계'는 오는 8월 30일까지 서울 송파구 서울책보고에서 진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