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보호한다는 법이 일자리를 없앤다"…근로자 추정제의 역설
[뉴스줌인] "보호한다는 법이 일자리를 없앤다"…근로자 추정제의 역설
  • 김다솜
  • 승인 2026.06.0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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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노동자를 지키겠다는 취지로 추진된 '근로자 추정제'가 오히려 프리랜서·배달 라이더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선의의 입법이 시장 현실과 충돌하며 보호 대상 자체를 줄이는 역설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근로자로 추정"…입증 책임의 대전환

2026년 1월 20일 정부와 여당은 사각지대 노동자 보호를 명분으로 근로자 추정제 도입과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을 노동절(5월 1일)까지 완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정은 두 법안을 '패키지'로 추진했다. 기본법만으로는 형식적 계약 때문에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오분류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목표로 한 노동절을 넘겼고, 22대 국회 전반기가 5월 29일 종료되면서 두 법안은 현재 후반기 국회로 논의가 넘어간 상태다.

2025년 12월 24일 발의된 근로기준법 개정안(김주영 의원 대표발의)은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분쟁 해결에서 근로자로 추정하고, 노무수령자가 이를 반증하지 못하면 추정이 유지되는 조항(제104조의2)을 신설하는 방식이다. 같은 날 김태선 의원이 발의한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안'은 균등처우, 성희롱·괴롭힘 금지, 안전·건강 보호, 투명한 계약 체결, 합리적 이유 없는 계약 변경·해지 제한 등을 일하는 사람의 권리로 명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사업주의 의무를 '노력해야 한다' 수준으로 규정하고 벌칙도 과태료(500만원 이하)에 그쳐, 노동계에서는 "알맹이가 빠진 법"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핵심은 입증 책임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현재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플랫폼 종사자 등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으려면 대법원 판단 기준에 따른 종속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반면 추정제가 도입되면 근로자로 판단하는 지표 중 하나만 충족해도 노무제공자를 근로자로 추정하고, 이를 뒤집으려면 노무수령자가 근로자가 아님을 모든 지표에 걸쳐 입증해야 한다.

정부는 이 제도가 정보 비대칭을 해소한다고 설명한다. 상대적으로 정보가 많은 사용자에게 입증 부담을 나눔으로써, 스스로 입증하지 못했던 근로자의 부담을 덜고 근로자성을 더욱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논리다.

라이더들이 배달앱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고 있다. ⓒ우아한청년들
라이더들이 배달앱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고 있다. ⓒ우아한청년들

"원칙에 반한다"…법리 논쟁으로 번진 쟁점

법학·노무 전문가들의 시선은 다르다. 지난 2일 미래노동개혁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이승길 한국ILO협회 회장은 "근로자 추정제의 핵심은 사용자에게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할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라며 "이는 입증책임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대법원 판단 기준과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의 규정의 추상성도 도마에 올랐다. 이 회장은 "정의 규정이 모호할 경우 위임·도급·용역 당사자의 예측가능성을 저해하고, 해석과 적용상 혼란을 초래해 법적 안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노무제공자에게 불명확한 기준으로 근로기준법과 유사한 규율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형평에도 어긋난다는 취지다.

김창배 열린사회포럼 사무총장은 수치로 반박했다. 김 사무총장은 "인적용역 사업소득자 862만 명 전체를 동일한 보호 대상으로 보는 것은 통계적 착시"라며 "근로자 추정제는 규제 비용과 사법 리스크를 키워 신규 계약 축소와 취약계층의 진입 기회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호하려다 내쫓는 구조…배달 현장의 딜레마

시장 현장의 우려는 더 직접적이다. 일하는 방식이 제각각인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자로 묶어 법을 강제하게 되면 되레 노동자들의 수익이 줄고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술 발전에 따라 급변하는 플랫폼 신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향후 플랫폼 산업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배달 라이더가 건당 3000원을 받는 구조에서 시간당 2건을 수행하면 수입은 6000원 수준에 그친다. 이때 대기시간을 포함한 노동시간 기준이 적용될 경우 부족한 임금을 보전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최저임금 인상 폭이 크지 않더라도 현장의 총 인건비 부담은 오히려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해외 사례는 이 우려가 현실화된 전례를 보여준다. 스페인은 2021년 플랫폼 배달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노동자로 추정하는 '라이더법'을 시행했다. 법 시행 직후 배달업체 딜리버루는 라이더 등 3800명의 고용에 영향을 미친 채 스페인 시장에서 철수했다. 딜리버루는 라이더법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법 시행이 철수 결정을 앞당긴 요인이 됐다고 인정했다.

소상공인과 영세사업장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외식업(일반·휴게 음식점) 폐업률은 11.5%로 최근 10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규 점포보다 폐업 점포가 많아지는 역전 현상도 2년 연속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은 "소상공인 및 영세사업장의 경우 임금·퇴직금·4대 보험료 등 추가 법정 비용이 급증하고, 외주 및 프리랜서 활용 기피와 고용 위축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플랫폼 노동자 스스로도 갈리는 시선

보호받아야 할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시간과 건수를 자유롭게 선택해 일하는 것이 플랫폼 노동의 핵심 가치인 만큼, 이를 강제로 근로계약 틀에 묶는 것이 오히려 일하는 방식을 제약한다는 반응이 상당하다.

이종수 노무법인 화평 공인노무사는 법안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선을 그었다. 이 노무사는 "형식상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질적으로 종속되어 노무를 제공하는 사례는 존재한다"면서도 "노무제공자 범위를 불필요하게 확대해 보호 필요성이 낮은 실질적 자영업자까지 포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글로벌 스탠다드와 다르다"…대안은 정밀한 설계

이번 포럼에서 주목된 또 다른 쟁점은 입법 방식의 국제 정합성이다. 이 회장은 "근로자 추정제와 같은 해외 유사 입법례는 거의 찾기 곤란하다"며 국제노동기준과의 부합 여부에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일본은 거래법 중심 접근을, EU는 플랫폼 노동에 한정한 접근을, 스페인은 경제적 종속성 기준을 활용하는 등 주요국 모두 보호 대상을 정밀하게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 논의됐다.

대안으로는 포괄적 편입 대신 맞춤형 보호 설계가 제시됐다. 김창배 사무총장은 "보호 대책은 노동법 일괄 편입보다 소득 기반 사회보장, 거래법 중심 규율, 입증지원 체계, 업종별 단계 도입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기우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제도 도입 과정에서 기존 노동법 체계와의 정합성, 보호 대상의 범위, 사용자 책임의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약한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목표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 수단이 오히려 일자리의 문을 좁히고 자율적 노동 방식을 선택한 이들에게서 선택지를 빼앗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법은 의도와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다. '보호의 역설'을 피하려면 법의 설계가 시장 현실만큼 정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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