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관과 입지가 인재 확보·기업 이미지까지 좌우
성장 단계 따라 임차, 건립, 자산유동화 선택
재택근무와 원격근무가 확산하고 있지만 기업들의 사옥 투자는 오히려 이어지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기업은 왜 사옥에 투자하는가’ 보고서에서 과거 사옥이 주로 직원을 위한 공간이었다면 현대 사옥은 직원과 구직자, 시장을 동시에 상대하는 공간으로 변화했다고 분석했다.
직원은 쾌적한 근무환경과 짧은 통근시간을 원하고 구직자는 사옥의 위치와 외관으로 기업의 첫인상을 판단하며 시장은 사옥의 규모와 개방 공간 등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팬ㄷ데믹 기간 다수 기업이 근무 공간을 줄이고 사무실 출근과 원격근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워크를 도입했지만 같은 기간 국내외 주요 기업들은 신사옥과 연구단지 등에 투자를 지속했다. 보고서는 사옥이 사라지지 않은 배경으로 사옥이 상대해야 하는 대상과 역할이 확대됐다는 점을 꼽았다.
혼자 일하는 공간 줄고 협업 공간 늘었다
재택근무 확산은 사무실 자체를 없애기보다 공간의 목적과 역할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집중해서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업무는 집이나 거점 오피스에서도 가능해지면서 사옥에서는 협업과 사회적 교류를 위한 공간의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이브리드 근무 환경에서는 타 팀 간 협업과 팀 전체의 생산성, 직원 참여 등을 위해 구성원 간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공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 오피스 공간 구성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보고서가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2006~2010년 준공 오피스와 2016~2020년 준공 오피스를 비교했을 때 개인공간 비율은 8.6%p 감소하고 소통공간 비율은 10.3%p 증가했다.
서울 주요 오피스에서도 사무공간과 회의실을 제외한 공용면적 비중은 16%에서 23%로 상승했다. 라운지와 휴게공간 등 직원 복지를 위한 공용공간이 차지하는 면적이 늘어난 것이다.
기업의 조직문화 변화도 사무공간 구성에 반영되고 있다. 과거 위계 체계가 엄격한 기업에서는 임원실을 별도로 구분하고 팀별 칸막이를 설치한 폐쇄형 사무실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반면 현대적 조직문화를 지향하는 기업에서는 개방형 사무실과 자유로운 라운지, 협업 공간 등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 오피스 도입이 증가하고 있다.
다만 개방형 공간이 항상 적합한 것은 아니다. 완전 개방형은 직원들이 서로 마주치기는 쉽지만 집중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어 개인공간과 협업공간을 구역화하거나 업무에 따라 자리를 선택하는 활동 중심형 공간이 활용되고 있다. 포커스룸과 폰부스처럼 혼자 조용히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두는 방식도 사용된다.
LG사이언스파크는 단지 가운데 큰길과 연구동을 잇는 지하통로,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공중 다리를 조성해 서로 다른 전공의 연구원들이 이동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애플파크 역시 원형 캠퍼스 중앙에 정원을 배치해 직원들이 우연히 만나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사옥 외관·출퇴근 거리도 채용 경쟁력
사옥은 구직자가 기업을 판단하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회사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어려운 구직자에게 건물의 외관과 위치는 입사 지원 전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보다. 일부 기업은 사옥 투어를 채용설명회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 있다.
보고서는 사옥 외관 디자인이 우수하거나 차별화될수록 구직자가 해당 기업을 문화적으로 우수하다고 느끼고 기업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져 입사지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시된 조사에서는 신입사원 지원자의 42%가 입사지원 과정에서 사옥 외관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물 자체보다 더 중요한 요인으로는 통근시간을 결정하는 입지가 꼽혔다. 관련 연구에서는 근무지와 통근시간이 이직 의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나타났으며, 통근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직 의향은 높아지고 근속 의향은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의 특성에 따라 적합한 사옥 입지도 달라진다. 보고서에 따르면 IT·미디어·스타트업이 강남과 성수를 선호하는 것은 젊은 인력이 몰려 있고 같은 업종 회사들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도심에는 대기업 본사와 금융기관, 공공기관이, 여의도에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판교에는 게임·소프트웨어 기업이, 마곡에는 대규모 연구소가 모여 있는 등 지역별로 업종 특성이 나타난다. 직원의 통근이 편리하고 업계 종사자가 집중돼 있으며 업무 외 시간에 이용할 문화시설이 풍부한 지역에 있는 사옥은 채용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옥 자체를 기업의 메시지로
사옥은 기업이 시장과 대중에게 신뢰도와 재정 건전성, 경영 철학을 보여주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광고나 보도자료는 짧은 시간 노출되고 휘발성이 크지만 사옥은 한번 건립하면 수십 년간 사용하고 되돌리는 데 큰 비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현대 기업의 사옥 디자인은 단순한 건축 요소를 넘어 기업의 기술과 정체성, 책임, 도시와의 관계 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첨단 기술 기업은 보유 기술을 사옥에 직접 적용하기도 한다. 네이버의 제2사옥 ‘1784’는 로봇 친화형 빌딩으로 로보틱스와 자율주행, AI, 5G, 클라우드 기술을 적용해 사옥 자체가 기술 테스트베드 역할을 수행한다.
사옥의 개방 공간을 통해 기업의 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용산 사옥 저층부에 미술관을 두고 일반에 개방해 화장품 회사뿐 아니라 문화를 다루는 회사라는 인상을 전달했다. 보고서는 기업이 누구를 사옥 안으로 들이고 어느 범위까지 개방하는지에 따라 시장과 대중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가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환경 관련 기술을 실제 사옥 설비에 적용하는 사례도 있다. 구글 베이뷰는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건물이 사용하는 전기의 약 40%를 직접 생산하고 지열 시스템을 활용해 연간 탄소배출량을 약 50% 줄이도록 설계됐다. 애플파크는 1년 중 9개월을 냉난방 없이 자연 환기만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