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를 겨냥한 시니어 사업의 범위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과거 시니어 사업이 요양원과 요양병원, 방문요양 등 돌봄이 필요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에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주거부터 이동, 운동, 금융, 사회활동, 인공지능(AI), 로봇까지 일상 전반으로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AIP(Aging in Place·지역사회 계속거주)’가 있다. 고령자가 몸이 불편해지더라도 시설로 옮기기보다 익숙한 집과 지역사회에서 가능한 한 오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개념이다.
정부가 지난 3월 27일부터 전국적으로 시행한 의료·요양 등 지역돌봄 통합지원제도 역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의료·요양·돌봄서비스를 연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시니어 산업도 이에 맞춰 바뀌고 있다. 고령자를 한곳에 모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서 나아가 필요한 돌봄과 기술, 주거·금융 서비스를 고령자의 일상으로 가져오는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보호’에서 ‘일상 유지’로…달라지는 돌봄의 역할
시장 확대의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고령인구 증가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5년 국내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20.3%를 차지해 처음으로 국민 5명 중 1명 수준에 올라섰다.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하지만 '2025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가 현재 삶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5.5%에 그쳤다.
고령자의 삶의 만족도가 낮다는 점은 고령자를 단순히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요구가 나오는 배경이다.
최근 민간 돌봄업체들이 프로그램을 바꾸는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케어닥은 최근 데이케어센터를 학교 형태로 구성한 ‘어르신돌봄학교’를 선보였다. 이용자를 보호 대상이 아닌 ‘학생’으로 설정하고 교육과 교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서울시의 ‘초록기억카페’처럼 초로기 치매환자가 작물 재배와 음료 제조·판매 등에 참여하도록 하는 공공 프로그램도 같은 방향이다.
돌봄이 식사와 목욕, 이동 등을 대신해 주는 서비스에서 고령자가 사회적 관계와 활동을 유지하도록 돕는 서비스로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범위도 함께 커진다.
방문요양이나 주간보호처럼 장기요양보험에 기반한 전통적인 돌봄뿐 아니라 교육·운동·여가·정서관리 등 비급여 서비스까지 결합할 여지가 생긴다.
사람 부족한 돌봄시장…AI와 로봇이 들어오는 이유
시니어 산업에서 기술 기업의 움직임이 빨라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가돌봄이 확대될수록 모든 시간을 사람이 채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AI 안부전화는 이미 지자체와 복지기관을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고 AI 스피커는 긴급 호출과 건강관리, 정서지원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로봇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국립재활원은 지난달 ‘2026 돌봄로봇 네트워크 포럼’을 열고 이동·이승·배설·목욕·식사 등 다양한 돌봄 영역에서 로봇을 실제 현장과 가정에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연구자뿐 아니라 산업계와 돌봄 현장, 실수요자까지 참여해 기술 개발과 실증 방향을 공유했다.
시니어 케어 기업 케어링은 이 자리에서 가정용 돌봄로봇 개발을 위한 트레이닝센터 필요성을 제기하고 자체 로봇 데이터 트레이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돌봄기업의 역할 변화다.
로봇 제조사가 하드웨어를 만든다고 해도 실제 고령자의 집은 연구실처럼 표준화돼 있지 않다. 주거구조와 신체상태, 돌봄 상황이 모두 다르다.
결국 현장 경험과 데이터를 가진 돌봄업체가 로봇기업의 실증·학습 파트너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와 관련해 기존 돌봄업체가 단순 서비스 제공업체에서 ‘돌봄 데이터 인프라’ 사업자로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코웨이까지 로봇…시니어 시장 경계 사라진다
로봇 시장에는 전통적인 돌봄기업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코웨이는 이달 위로보틱스와 협력한 ‘보행보조 웨어러블 로봇’을 정식 출시하고 렌탈을 시작했다. 1.6㎏의 착용형 장비로 걷기와 계단 이동, 산책 등을 보조한다.
코웨이는 관련 연구에서는 평균 연령 78.6세 성인 9명이 4주간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한 보행훈련을 진행한 뒤 보행 속도가 평균 14.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더 주목할 부분은 판매 방식이다.
코웨이는 제품을 일시불 기기가 아닌 렌탈 상품으로 내놨다. 정수기·매트리스 등에서 구축한 방문관리와 렌탈 사업 경험을 새로운 시니어 제품에 적용하는 것이다.
시니어 시장에서 기존 산업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앞으로 돌봄기업만 시니어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가전과 로봇, 보험, 금융, 부동산 기업들이 각자 확보한 고객과 유통망을 이용해 시니어의 일상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KB금융이 고령층 지원을 금융에 한정하지 않고 이동과 건강, 생활 지원까지 넓히는 것도 같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금융회사가 고령자의 자산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접점을 확대하면서 장기적인 고객 관계를 만드는 방식이다.
‘살고 싶다’와 ‘살 수 있다’의 간극…시니어주택의 가격 문제
주거는 시니어 산업에서 또 다른 시장으로 꼽힌다.
알스퀘어 리서치센터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국내 60세 이상 인구는 약 1517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9% 수준이며 2050년에는 2218만명, 47%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토지주택연구원 조사에서는 은퇴자의 64%가 시니어주택 입주 의향을 나타냈다. 그러나 입주를 가로막는 요인 역시 명확했다. 68%가 ‘가격·비용 부담’을 꼽았다.
이에 ‘시니어가 많아지니 고급 실버타운을 많이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시장을 해석하기는 어렵다. 구매력을 가진 고령층은 늘고 있지만 모든 시니어가 고가의 입주비와 월 이용료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데이케어센터와 재가서비스의 사업 기회가 생긴다.
고령자가 기존 집에 계속 거주하면서 낮에는 센터에서 건강관리와 식사, 재활, 여가 서비스를 받는 방식은 고가 시니어주택보다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시장은 고급 시니어주택과 공공 돌봄이라는 양극단에서 벗어나 소득과 건강 상태에 맞춰 가격과 서비스 수준을 세분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니어 사업, ‘돌봄’에서 ‘생활 서비스’ 경쟁으로
시니어 시장의 변화는 특정 상품 하나가 성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돌봄기업은 재가돌봄과 데이케어 서비스를 넓히고, 가전·로봇기업은 이동과 건강관리를 돕는 제품을 내놓고 있다. 금융사와 건설사도 각각 금융 접근성과 주거 서비스를 앞세워 시니어 고객과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시니어 사업의 범위가 ‘아픈 노인을 돌보는 서비스’에서 고령자가 일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주거·건강·이동·돌봄·사회활동을 지원하는 산업으로 넓어지는 모습이다.
다만 고가 시니어주택에서 나타난 가격 부담처럼, 결국 소비자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가 중요할 전망이다.
고령자가 살던 곳에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필요한 서비스를 얼마나 현실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느냐가 향후 시니어 시장의 경쟁력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