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가구 시대] 가족은 누가 증명하나…'정상가족' 밖 관계를 인정해야 할 때
[1인가구 시대] 가족은 누가 증명하나…'정상가족' 밖 관계를 인정해야 할 때
  • 김영호
  • 승인 2026.10.2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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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무엇으로 만들어질까.

혼인신고일까. 혈연일까. 아니면 오랫동안 서로를 돌보고 삶을 나눈 시간일까.

1인가구와 비혼 인구가 늘어나면서 한국 사회가 미뤄왔던 질문이 점점 현실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법적으로는 남이지만 가족보다 가까운 사람, 함께 살지는 않아도 위기의 순간마다 서로를 돌보는 사람, 오랜 세월 삶을 공유한 친구와 동반자는 이제 낯선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가 제도와 마주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민법 제779조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와 직계혈족, 형제자매 등을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다. 혼인이나 혈연으로 연결된 관계라면 가족이라는 사실 자체를 별도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가족관계등록부 한 장이면 상당 부분 증명이 끝난다.

반면 가족관계등록부에 없는 사람은 다르다.

오랫동안 함께 살았는지, 서로를 돌봤는지, 얼마나 자주 연락했는지, 주변 사람들이 두 사람을 어떤 관계로 인식했는지 등을 다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한국 사회가 이제 고민해야 할 것은 단순히 '가족의 범위를 넓힐 것인가'가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친밀한 관계를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인정할 것인가다.

혈연은 묻지 않는데, 친밀함은 증명해야 한다

이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분야 중 하나가 장례다.

2023년 개정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무연고 사망자가 생전에 장기적·지속적인 친분관계를 맺은 사람이나 종교·사회적 연대활동을 함께한 사람 등이 희망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장례를 주관하도록 할 수 있게 했다.

혈연이나 혼인관계가 아니더라도 고인의 마지막을 책임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분명 이전보다 진일보한 제도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남는다. 법이 말하는 '장기적·지속적인 친분관계'는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최근 한 보도에서는 9년 동안 알고 지내며 방을 내어주고, 병원 입원 보증을 서고, 요양병원 면회를 다닌 지인이 있었음에도 고인이 무연고 사망자로 장례를 치른 사례가 소개됐다. 현행 제도에서는 가까운 지인이 장례주관자가 되려면 장기간 친밀한 관계였다는 객관적 자료를 내거나, 고인이 생전에 문서나 유언 등으로 장례주관자를 지정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여기서 묘한 역설이 생긴다.

십수 년간 연락하지 않은 혈족은 가족관계등록부를 통해 관계를 쉽게 설명할 수 있지만, 매일 밥을 먹고 병원에 동행하고 마지막 순간을 지킨 친구는 자신이 얼마나 가까운 사람이었는지를 입증해야 할 수 있다.

제도가 혈연의 존재는 확인하지만 관계의 실질까지 확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상가족'의 기준은 이미 현실과 멀어졌다

한때 가족의 전형은 명확했다.

결혼한 부부가 자녀를 낳고 함께 사는 형태다. 이른바 '정상가족' 모델이다.

하지만 현실의 가족은 이미 훨씬 복잡하다.

혼자 사는 사람도 있고, 결혼하지 않은 연인이 함께 살기도 한다. 친구끼리 주거와 생활비를 공유하고 서로를 돌보기도 한다. 부모·자녀 관계가 법적으로 존재하지만 수십 년 동안 교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법적 가족관계가 전혀 없어도 누구보다 강한 돌봄과 부양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도 있다.

사회의 인식도 변했다.

통계청의 2024년 사회조사에서 '남녀가 결혼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67.4%였다. 가족과 결혼에 대한 사회적 기준은 이미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혼인·혈연에 기반하지 않은 다양한 생활공동체가 실재하지만 기존 법과 제도로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며 생활동반자법과 같은 제도 마련의 필요성을 지적해왔다.

문제는 제도가 여전히 현실보다 느리다는 점이다.

가족인가 아닌가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함께 책임졌는가'

그렇다고 단순히 "친하면 모두 가족으로 인정하자"고 결론 내리기도 어렵다.

가족이라는 지위에는 권리만 붙지 않는다.

재산과 상속, 부양, 세금, 사회보험, 의료 의사결정 등 수많은 권리와 의무가 연결된다. 국가가 아무런 기준 없이 친밀한 관계를 가족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가족의 문턱을 무조건 낮추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적 장치다.

현재 국회에는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2025년 발의된 이 법안은 성인 두 사람이 생활동반자관계를 등록하고 동거와 부양·협조 의무를 지는 동시에 재산분할, 사회보험, 공공부조, 가정폭력 보호 등 여러 영역에서 법적 권리와 의무를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찬반과 별개로 여기서 주목할 지점이 있다.

지금처럼 관계가 필요한 순간마다 '우리가 얼마나 친한 사이인지'를 사후적으로 증명하게 하는 대신, 당사자가 미리 자신의 중요한 관계를 선택하고 등록할 수 있게 하자는 발상이다.

다만 모든 친밀한 관계를 혼인과 동일하게 취급할 것인지, 연인과 친구·돌봄 공동체를 하나의 제도 안에 넣을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올해 발표된 법학 연구에서도 서로 성격이 다른 관계를 단일한 생활동반자제도로 포괄하는 데 법체계상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서 오히려 제도를 더 세분화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상속을 위한 관계, 의료 의사결정을 맡길 관계, 장례를 책임질 관계, 서로 돌봄을 제공하는 관계를 모두 하나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지 않고 개인이 필요한 권한을 지정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1인가구 증가에 따른  '지정돌봄관계등록제'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지=AI생성)
1인가구 증가에 따른 '지정돌봄관계등록제'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지=AI생성)

1인가구 시대, 필요한 건 '혼자가 되지 않을 권리'

이 문제는 결국 1인가구 정책과도 연결된다.

1인가구 정책은 오랫동안 주거비와 생활비, 안전, 식생활 같은 '혼자 사는 방법'에 집중돼왔다.

하지만 혼자 산다는 것과 관계없이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도 가장 가까운 친구가 있고, 연인이 있고, 이웃이 있다. 누군가가 아프면 돌보고, 위급할 때 연락하며, 때로는 가족보다 더 많은 일상을 공유한다.

그 관계들이 법적인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의료와 돌봄, 주거와 장례 같은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사라진다면 1인가구 정책에도 빈칸이 생긴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1인가구에게 다시 가족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정책이 아니다.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에 필요한 권리와 책임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정상가족'의 반대말은 '비정상가족'이 아니다.

어쩌면 이제는 정상가족이라는 하나의 기준 자체가 현실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가족관계등록부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이 되는 시대에서, 실제로 누가 나를 돌보고 누구를 내가 책임지고 있는지까지 제도가 바라봐야 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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