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돌봄제'가 필요해② 성년후견 vs 생활동반자법, 왜 '지정돌봄제'인가
'지정돌봄제'가 필요해② 성년후견 vs 생활동반자법, 왜 '지정돌봄제'인가
  • 김영호
  • 승인 2026.05.2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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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 능력 잃어야 보호받고, 동성혼 논란에 막히고...기존 제도가 놓친 1인가구의 현실

혼자 사는 사람이 응급실에 실려 갔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10년 지기 친구다. 하지만 그 친구는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다.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같은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제도로는 '성년후견제도'와 '생활동반자제도'가 거론돼 왔다. 그러나 두 제도 모두 현실의 돌봄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지정돌봄관계등록제가 새롭게 논의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성년후견제도: “판단 능력을 잃어야 보호받는다”

성년후견제도는 질병·장애·노령 등으로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해진 성인을 위해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민법 제929조~제959조에 근거하며, 성년후견·한정후견·특정후견·임의후견으로 나뉜다.

문제는 제도가 임의후견을 제외하면 대부분 판단 능력을 상실한 이후에야 절차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지금 건강하게 홀로 살아가는 고령 1인가구는 사실상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셈이다.

사전에 대비하려면 임의후견을 활용해야 하지만 절차 역시 간단하지 않다. 가정법원에 후견 개시를 신청하고 의사 감정과 법원 심리를 거쳐야 한다. 신청 자격도 본인과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검사, 지방자치단체장 등으로 제한돼 있어 제3자의 개입은 쉽지 않다.

권한 구조 역시 한계로 지적된다. 후견인은 피후견인을 대신해 재산 관리, 계약 체결, 의료 결정 등 광범위한 법적 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가족 간 재산 분쟁이나 의료 결정권 갈등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후견 관계 자체가 ‘보호하는 사람’과 ‘보호받는 사람’의 수직적 구조라는 점에서, 상호 돌봄이라는 현대적 관계와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생활동반자제도: “동성혼 논란에 가로막혔다”

생활동반자제도는 혼인이나 혈연 관계가 아닌 성인 간 생활공동체를 법적으로 등록해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다.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 독일의 등록 생활동반자관계법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관련 법안을 발의됐지만,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됐다.

가장 큰 쟁점은 동성혼 논란이었다. 생활동반자제도를 사실상 동성혼 합법화로 보는 반발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제도의 취지는 비혼 고령자, 동거 파트너, 돌봄 공동체 등 다양한 생활 관계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데 있었지만, 논의 자체가 성소수자 인권 이슈와 결합되면서 제도화 동력을 잃었다.

구조적 한계도 있다. 생활동반자제도는 기본적으로 1대 1의 배타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 이미 혼인 중이거나 기존 동반자 관계가 있으면 새로운 관계 등록이 어렵다. 여러 지인과 돌봄을 나누는 중·고령 1인가구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정돌봄제는 무엇이 다른가

앞서 국회미래연구원이 제안한 지정돌봄관계등록제는 기존 두 제도의 공백을 보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핵심 차이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판단 능력이 충분할 때 미리 등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성년후견제도처럼 능력을 상실한 이후가 아니라, 건강한 상태에서 돌봄관계인을 사전에 지정해 법적 효력을 발생시키는 방식이다. 등록은 행정기관 접수와 동시에 효력이 생기도록 설계됐다.

또 비상호성과 비배타성을 원칙으로 한다. 생활동반자제도처럼 반드시 상대방과 1대 1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A가 B를 돌봄관계인으로 지정해도, B는 또 다른 사람인 C를 지정할 수 있다. 복수 지정도 가능하다. 실제 돌봄이 가족·친구·이웃 등 여러 관계 속에서 분담되는 현실을 반영한 구조다.

권한 범위도 제한적이다. 재산관리권이나 상속권은 제외하고, 응급 상황에서의 치료 선택 및 동의권, 실종 신고와 긴급 구조 요청이 가능한 신상 보호권, 이를 위한 정보 접근권 등에 초점을 맞춘다. 가족 간 법적 충돌이나 권한 남용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설계다.

도입 초기에는 생명권 보호 중심으로 범위를 최소화하고, 사회적 수용성을 확인하며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도 담겼다.

기존 제도가 각각 너무 무겁거나, 혹은 너무 논쟁적이었다면, 지정돌봄관계등록제는 보다 가볍고 유연한 방식으로 현실의 돌봄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1인가구 증가에 따른  '지정돌봄관계등록제'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지=AI생성)
1인가구 증가에 따른 '지정돌봄관계등록제'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지=AI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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