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기획① 결혼 안 해도 '가족'…10년 묵은 생활동반자법, 다시 국회 문을 두드린다
'가정의 달' 기획① 결혼 안 해도 '가족'…10년 묵은 생활동반자법, 다시 국회 문을 두드린다
  • 정단비
  • 승인 2026.04.30 15: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4년 첫 발의→2023년 재발의…'가족구성 3법' 속 생활동반자법, 찬성 여론에도 표류

혈연으로 얽히지 않아도,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아도 함께 사는 사람을 '가족'으로 인정해 달라. 10여 년 전 국회에서 처음 제기됐다가 좌초됐던 생활동반자법이 1인 가구 비중 36%, 비혼·동거 가구 증가라는 변화한 지형 위에서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올라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지난 2014년 진선미 의원이 처음 발의하려 했으나, 사회적 반발 속에 법안 제출 단계에서 좌초됐다. 9년 만인 2023년 제21대 국회에서 처음 공식 법안이 발의됐으나, 진행되지 못 했다. 이어 제22대 국회에서 2025년 9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민주당 일부 의원이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을 다시 국회에 냈다. 같은 해 시민사회 연대는 민법 개정안(혼인평등법)·모자보건법 개정안과 묶어 '가족구성 3법'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용혜인 의원은 "생활동반자로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혼인과 혈연에 기반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살 집을 구하거나 공동으로 대출을 받을 수 없다"며 "서로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도 곁을 지키기 어렵고, 응급상황에 동반자의 수술동의서에 사인할 수 없다. 노후를 함께 준비할 수도, 장례의 상주가 되어줄 수도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법안은 '민법'을 비롯하여 총 25개의 법률을 개정하는 내용이 담겼으며, 성인 두 사람이 합의 아래 생활을 함께 꾸리기로 등록하면, 배우자·혈연에 기반한 기존 가족이 아니더라도 일부 법적 지위를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적용 대상에는 동성 커플, 비혼 이성 동거 커플, 친구·노년 돌봄 관계까지 포함될 수 있다.

발의안이 규정한 권리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의료 결정 대리, 사회보험·공공임대 입주, 유족·상속 관련 일부 권리, 가정폭력 보호 대상 편입 같은 '생활 밀착형' 항목이다. 혼인과 100% 동일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단위로서의 결합을 인정하는 중간 제도에 가깝다.


2023년 재발의된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은 혼인·혈연이 아닌 성인 2인의 생활 공동체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2020년 여성가족부 조사에서 응답자 69.7%가 비혈연 가족 인정에 찬성한 바 있다 (이미지=Flux AI 생성)
지난해 재발의된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논의의 목소리가 높다. (이미지=Flux AI 생성)

왜 지금 다시 논의되나

통계청 인구총조사 기준 2024년 1인가구 비중은 36.1%로 역대 최고치를 다시 썼다. 혼인 건수도 꾸준히 줄어들면서 '결혼=가족'이라는 전제 자체가 현실과 멀어졌다. 동시에 동거·비혼 커플, 성인 자녀와 부모의 공동 거주, 비혈연 룸메이트·친구 관계가 장기화되는 사례가 늘었다.

2020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가족 다양성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거주하고 생계를 공유하는 사람을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69.7%에 이르렀다. 여론은 변했지만, 제도는 아직 따라오지 못했다고 해석된다.

1인가구 지원 정책이 양적으로 늘어나는 동안에도 '가족 단위'가 필요한 행정·금융 서비스에서 비혼 동거·비혈연 생활공동체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머물러 왔다.

최근에는 국회입법조사처가 '1인 고령자 가구의 자발적 상호 돌봄 제도화를 위한 입법·정책 과제'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법체계는 혈연·가족 기반으로 되어 있어 독거노인이 가족의 돌봄을 받지 못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더불어 국회입법조사처는 "생활동반자법이 특정 집단의 권리 확보를 위한 것으로 문제시되거나, 기존 가족 질서를 위협하는 제도로 잘못 인식돼 있다"며 "화하는 사회 현실에 대한 제도적 대안으로서의 의미는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고 찬반 진영 간 대립 구도만 고착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찬반 여론의 갈등...변화한 시대에 달라질까

생활동반자법 논의는 매번 비슷한 지점에서 멈춰서고 있다. 찬성 측은 1인가구·비혼·다양한 가족 형태의 현실을 제도가 따라잡아야 한다는 점, 의료·복지·주거에서 생활 단위로 묶인 이들이 받는 실질적 불이익이 크다는 점을 든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 국책 연구기관도 관련 연구 보고서에서 제도적 공백 문제를 반복해 지적해 왔다.

반대 측에서는 결혼·혈연에 기반한 기존 가족 제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동성 커플에 사실상 준혼인 지위를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 등을 문제 삼는다. 일부 종교 단체·보수 시민단체는 2023년 발의 당시에도 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잇따라 열었다.

찬반 논의의 교집합은 '가족의 정의를 어디까지 넓힐 것인가'다. 법안은 혼인 제도 자체를 건드리지 않고, 별도 등록제를 만들겠다는 접근을 택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혼인과 유사한 지위가 부여되느냐' 등의 시각에서 양측의 해석이 갈린다.


생활동반자법으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될 경우 1인가구·비혼 커플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크게는 의료 영역이 될 수 있다. 의료 영역은 가장 많은 문제 제기가 되는 부분으로 수술 동의·중환자실 면회·임종 시 결정권 같은 상황에서 현재는 법적 배우자·직계가족만 권한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또 주거·금융 영역에서 보면 공공임대주택의 일부 유형, 일부 금융상품의 '가구 단위' 적용에서 제외되던 비혼 동거 커플이 포함될 가능성이 열린다. 사회보험·세제 영역에서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상속·증여 관련 규정에 새로운 범주가 생긴다.

물론 법안이 발의됐다고 해서 곧장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2023년 처음 발의된 법안은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됐고, 22대 국회 들어서도 다시 발의가 된 상태다.

생활동반자법이 이번 국회에서도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다만 가족 형태가 현실적으로 이미 다원화된 상황에서, '제도는 언제쯤 현실을 인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앞으로 더 자주 정치·행정 영역의 문을 두드릴 가능성이 크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