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 발의된 '전세 9년 갱신법'을 두고 부동산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임차인이 원하면 한 주택에서 최대 9년까지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이 법안은 전세사기와 보증금 미반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세입자 보호 조치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을 대표발의자로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등 범여권 의원 10인이 발의한 이 개정안은 현행 2+2년(최대 4년)인 임대차 기간을 3+3+3년(최대 9년)으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부동산 업계와 임대인들은 "9년 동안 계약이 묶이면 누가 전세를 내놓겠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전세 매물 급감과 월세 전환 가속화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는 가운데, 이러한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는 해외 사례들이 있다.
독일: 12년 살아도 싱크대는 직접 사야
독일은 세입자 보호가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다. 세입자 평균 거주기간이 12.8년을 넘으며, 강력한 임대료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가 시행되고 있다. 거주기간을 최대 10년까지 보장하며, 헌법에 준하는 세입자 보호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도 심각하다. 이미 입주한 세입자는 사실상 무기한 거주가 가능하지만, 신규 세입자가 되기는 극히 어렵다. 중장년층 세입자들이 도심 핵심지역에 수십 년간 거주하면서, 정작 직장을 위해 도심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신혼부부들은 외곽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택의 질 하락이다. 월세 인상이 제한되니 집주인이 집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졌다. 도배는 물론 싱크대 등 주방 설비까지 세입자가 직접 구매해 설치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보증금 반환에 6개월에서 1년이 걸리며 각종 명목으로 일부를 떼이는 사례도 빈번하다.
만성적인 공급 부족으로 2008~2018년 10년간 뮌헨은 67%, 베를린은 65% 등 주요 7개 도시의 임대료가 평균 57% 급등했다. 세입자를 보호하려던 정책이 오히려 임대료 폭등을 불러온 역설이다.
프랑스: 집 구하려면 '세입자 면접' 필수
프랑스는 최단 임대기간 3년을 보장하며, 헌법에 거주권을 명시할 정도로 세입자 보호에 적극적이다. 그 결과는 어떨까?
프랑스에서 세입자가 되려면 같은 입주 희망자들과 '면접'을 봐야 한다. 임대인은 안정적으로 월세를 지불할 수 있는 세입자를 선별하기 위해 까다로운 심사를 진행한다.
파리 27평형 아파트(월세 약 500만원)를 임대하려면 월급명세서로 임대료의 3개월치(1500만원) 이상을 증명하거나, 1년치(6000만원) 보증금을 은행에 예치해야 한다. 증빙서류를 제출하지 못하면 임대 자체가 불가능하다.
미국 뉴욕: 50년째 같은 임대료의 함정
세입자 보호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진 미국 뉴욕에도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뉴욕시는 1947년 이전 건물에 1971년 이전 입주한 세입자에게는 당시 임대료만 받도록 한 '렌트컨트롤법'을 시행하고 있다.
220만 가구 중 절반이 임대료 규제를 받는 뉴욕에서, 임대료 규제 주택의 공실률은 2.06%로 비규제 주택의 6.07%보다 훨씬 낮다. 일단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 세입자들 때문에 신규 임대 물량이 극도로 부족한 것이다.
그 결과 2019년 기준 뉴욕시는 34만 채 이상의 주택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에 내몰렸다. 공급 부족으로 맨해튼 평균 월세는 5000달러(약 670만원)를 넘어섰고, 규제를 받지 않는 지역의 임대료는 계속 폭등하고 있다.
전세 매물 급감 현실로
월세 전환 가속화
우리나라도 이미 경고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송경호 연구위원의 2023년 보고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이 주택시장에 미친 영향'에 따르면, 2020년 계약갱신청구권(4년 보장) 도입 직후 전월세 거래량은 평균 25% 감소했으며, 특히 전세 거래 비중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2025년 4월 서울 전세 매물은 3만296건에서 10월 21일 기준 2만4154건으로 20.3% 감소했다. 특히 송파구는 2479건에서 1297건으로 50% 가까이 급감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25년 10월 서울 아파트 신규 전세 매물은 21일까지 총 1845건으로 집계됐다. 이달 말까지 열흘이 남았지만, 이런 추세라면 지난달 물량(4971건)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지난 3월 7740건이었던 전세 매물은 6·27 대책 발표 직후인 7월 5886건으로 떨어진 데 이어 계속 감소세다.
전세 매물이 줄면서 평균 전세가도 가파르게 오르는 추세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2025년 1월 5억7257만원에서 최근 6억3000만~6억5000만원대까지 상승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34주 연속 상승 중이며, 서초구(0.34%), 송파구(0.32%) 등 주요 지역의 상승률이 서울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전세수급지수는 103.2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또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5년 9월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144만원으로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2025년 1월 134만원에서 9개월 연속 상승세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데이터를 보면,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2011년 통계 집계 이후 최고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 2020년 6만783건, 2021년 7만1080건을 거쳐 2024년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4년 보장제도만으로도 시장 위축
더 심각한 것은 현행 2+2년 제도만으로도 이미 시장 위축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2023년 2월 부동산 중개업체 집토스의 분석에 따르면, 2022년 12월 수도권에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갱신계약은 6574건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2년 1월 1만4119건 대비 53.4% 감소한 수치다.
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더 좋은 조건의 매물로 갈아타는 현상도 늘었다. 같은 기간 전세를 월세로 변경한 계약은 5971건으로, 전년 동기(3572건) 대비 67% 증가했다.
더불어 이중가격 현상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7월 서울 아파트의 경우 ㎡당 평균 보증금이 신규 계약은 851만원, 갱신 계약은 640만원으로 큰 격차를 보였다.
9년 갱신법이 도입되면 이런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임대인들이 9년 뒤 시세를 고려해 초기 보증금을 무리하게 인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해외 사례가 보여주듯, 계약갱신청구권이 강화되면 임대인들은 초기 입주자 선정 단계에서 훨씬 까다로운 심사를 진행하게 된다. 안정적인 소득 증명, 신용조회, 보증인 요구는 물론, 프랑스처럼 '세입자 면접' 시대가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세입자로 들어간 사람은 안정적으로 살 수 있지만, 새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높은 문턱에 막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결국 정책의 수혜자와 피해자가 갈리는 불공평한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한국의 전세시장도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선진국의 전철을 밟아 '집 구하려면 면접 보는' 시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임차인 보호와 시장 자율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