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 고유의 전세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그는 수도권 주택시장 과열과 가계부채 급증을 막기 위해서는 단기적 고통이 따르더라도 전세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 23일 기준금리 동결(연 2.5%) 결정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세 제도를 끊어주는 등 고통이 따르더라도 부동산 시장에 대한 구조개혁은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동산 자산 가격 상승은 우리나라 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을 갉아먹고 있다"며 "주택 가격이 자산 가격처럼 변질되면서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전월세 문제까지 일으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창용 총재는 앞서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전세 제도 개혁의 불가피성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전세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레버리지(빚을 이용한 투자)가 계속 높아질 수 있다"며 "반드시 한 번은 끊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10월 15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에서 전세자금 대출에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한 것에 대해서도 "가계부채 누적 상황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금융안정 vs 경기부양의 딜레마
한국은행은 3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연 2.5%로 동결했다.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경기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도 금리 인하를 미룬 것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집값 급등과 가계부채 증가 우려 때문이다.
이 총재는 "유동성을 더 늘려 부동산 시장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하지 않으려 한다"며 "과도한 금리 인하 기대가 형성되지 않도록 주택시장의 과열 심리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8월에도 가계대출이 급증했을 때 금리를 동결했더니 대출 증가세가 둔화돼 10월 금리인하로 이어졌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해피엔딩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경계감을 드러냈다.
이창용 총재는 주택을 투자 대상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주가 상승은 생산적이고 소비 진작 효과도 있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전월세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울에 아무리 많은 집을 지어도 유입 인구가 계속 늘어나면 공급이 따라갈 수 없다"며 "입시 제도 등 교육 문제도 해결해 서울 인구 유입을 줄여야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부동산 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강조하면서 "한두 달 새 부동산 가격이 잡히지 않더라도 정책 방향은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요 정책과 함께 공급 정책, 중장기 대책이 모두 일관되게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전세대출을 기대했다가 받지 못하는 가구 등 정책 변화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계층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이들에 대한 보완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향후 통화정책 방향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7명 중 신성환 위원만 금리 인하를 주장했고, 나머지 6명은 동결 의견을 냈다. 이 총재는 "금통위원 6명 중 4명은 현재 2.5%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의견"이라며 향후 점진적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부동산 시장 안정과 경기 부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신중한 접근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