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 도서 시장이 '종이책'으로 다시 돌아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교보문고에서 2025년 상반기 한국소설 판매가 전년 대비 58.2% 증가했고, 예스24 2025년 연간 베스트셀러 1위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차지하면서 27주간 종합 10위 안에 머물렀다.
이와 함께 AI 관련 책은 2000종을 넘었고, 정치 분야는 40.8%, 정치·외교 분야는 113.9% 성장했다. 특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힙하다는 ‘텍스트힙’ 트렌드도 한몫하고 있다.
한강 효과, 한국소설 판매 58.2% 성장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만든 효과는 2025년 도서 시장 전체에 영향을 줬다. 교보문고 상반기 소설 분야는 전년 대비 28.1% 성장했고, 그 안에서 한국소설은 58.2%의 가장 가파른 성장률을 기록했다. 1년 사이 두 자릿수 성장이 매우 드문 출판 카테고리에서 한국소설이 가장 큰 성장폭을 만든 셈이다.
예스24의 2025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도 한강의 '소년이 온다'였다. 같은 작품이 27주간 종합 10위 안에 머물렀다는 것은 신간이 빠르게 등장하고 사라지는 일반 도서 시장 흐름과 결이 다른 패턴이다. 한강의 기존 작품·신간이 동시에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채우는 흐름이 1년 내내 이어졌다.
교보문고 2025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 역시 한강의 '소년이 온다'였다. 한국소설 시장이 한 작가의 IP를 중심으로 1년 가까이 안정적인 베스트셀러 흐름을 만든 사례는 한국 출판 시장에서 이례적이다. '한강 효과'가 한국소설 카테고리 전체로 번지면서 같은 시기 다른 한국 작가의 신작·재출간본 판매도 동반 상승했다.
정치 분야 113.9% 성장, 사회정치서의 부활
2025년 도서 시장의 또 다른 축은 사회정치서의 부활이다. 교보문고 정치 분야 도서 판매가 전년 대비 40.8% 성장했고, 정치·외교 관련 분야는 113.9% 늘었다. 예스24 2025년 베스트셀러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의 '결국 국민이 합니다'가 상반기 1위를 기록하면서 사회정치서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본격 진입했다.
정치·외교서의 가파른 성장은 한국 정치 환경의 변화와 직접 맞물린다. 대선·총선 같은 정치 이벤트, 한미 관계·중국 관계·북한 관계 같은 외교 이슈, 대통령제 개헌 같은 제도 논의가 1년 내내 이어지면서 독자의 정치·정책 정보 수요가 높아졌다. 신문·뉴스·유튜브에서 단편적으로 소비되던 정보가 책 단위의 깊이 있는 분석으로 옮겨가는 흐름이다.
AI 도서 2000종 돌파
2025년 출판계의 가장 큰 화두는 AI였다. AI·인공지능 관련서 출간이 한 해에 2000종을 돌파했다.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카테고리에 한 해 2000종을 출간하는 흐름은 출판사·서점·독자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이다.
AI 도서의 카테고리도 빠르게 분화됐다. 일반 독자용 'AI 입문서', 직장인용 'AI 활용서', 개발자용 'AI 코딩 책', 기업 임원용 'AI 전략서', 청소년용 'AI 교육서'가 동시에 출간된다. 챗GPT·클로드·제미나이·미드저니 같은 도구별 활용서, AI 윤리·법·정책 분야 책, AI 미래 전망서까지 카테고리가 세분화됐다.
다만 AI 도서 2000종이 모두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출간 후 1~2개월 안에 베스트셀러 진입에 실패하면 빠르게 소진되는 카테고리 특성이 있다. 신간 회전율이 다른 카테고리보다 빠르고, 정보의 유효 기간이 짧다. 'AI 책은 1년 지나면 옛날 책'이 되어버리는 상황이다.
투자서, ETF·코인 책의 부활
2025년 도서 시장의 또 다른 성장 카테고리는 투자서다. ETF 관련 투자서 판매량이 전년 대비 109.6%, 코인·암호화폐 관련 투자서가 49.9% 성장했다. 같은 시기 부동산·주식 일반 투자서도 안정적 판매를 이어갔다.
투자서 부활은 시장 환경과 맞물린다. 2025년 들어 미국 ETF 시장에서 한국 투자자 비중이 빠르게 늘었고, 비트코인·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대중들의 자산 형성 욕구가 ETF·코인 같은 새 자산군으로 옮겨가면서 관련 책 수요가 빠르게 늘어났다.
청년들이 다시 종이책으로, 독립서점의 부상
도서 시장 회복의 중요한 한 축은 독립서점이다. 대형 서점·온라인 서점이 베스트셀러 위주로 운영되는 동안, 동네 독립서점은 큐레이션·테마·작가와의 만남·낭독회 같은 콘텐츠로 독자를 끌어당겼다. 서울 마포·종로·연남, 부산 영도·해운대, 제주 같은 지역에서 독립서점 카테고리가 빠르게 자리 잡았다.
독립서점의 핵심 고객은 청년층이다. 좁은 자취방에서도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보내는 시간, 동네 독립서점에서 큐레이션된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 작가·다른 독자와의 만남이 사회·정서 욕구와 맞물렸다. 디지털 콘텐츠 일변도였던 청년의 일상이 종이책·서점·낭독회 같은 아날로그 카테고리로 일부 옮겨가는 흐름이다.
다만 독립서점의 운영은 여전히 어렵다. 매출 규모가 작고, 큐레이션·콘텐츠 운영에 시간이 많이 들면서, 1인 운영자의 번아웃 위험이 누적된다. 독립서점이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지만 개별 서점의 지속성은 여전히 변수다.
다음 라운드는 종이책 vs 전자책 균형
종이책 시장 회복의 다음 라운드는 종이책 vs 전자책의 균형이다. 한강 효과·AI 도서·정치서·투자서가 종이책 매출을 끌어올린 동안, 전자책·오디오북도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한 권의 콘텐츠가 종이책·전자책·오디오북·요약 영상·SNS 콘텐츠로 동시에 유통되는 구조가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출퇴근 길에는 오디오북, 자취방에서는 전자책, 주말에는 종이책을 보는 멀티 포맷 독서가 일반화됐다. 종이책 시장이 회복되더라도 전자책·오디오북의 비중이 다시 줄어드는 흐름은 아니라는 말이다.
일상에 종이책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시점, 그 흐름이 2026년에도 이어지느냐가 관건이다. 출판 시장의 진정한 회복세인지 한국 출판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