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집에서 화재나 누수가 발생했을 때, 임차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특히 집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라면 막막함은 커진다. 1인가구에게 주거 사고는 함께 판단을 나눌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홀로 감당해야 하는 위기다. 하지만 법은 이미 임차인에게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임대인에게는 법적 수선 의무가 있다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이 계약 존속 중 목적물을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목적물에 파손 또는 장해가 생긴 경우, 이를 수선하지 않으면 임차인이 계약에서 정한 목적에 따라 사용·수익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정도라면 임대인은 수선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다. 누수나 화재로 인한 건물 파손은 이 기준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임차인에게는 통지의무가 있다. 민법 제634조는 임차물의 수리를 요하거나 임차물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는 자가 있을 때 임차인은 지체 없이 임대인에게 이를 통지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사고 발생 즉시 문자, 카카오톡, 내용증명 등으로 통보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집주인이 연락 안 된다면, 임차인이 직접 수리하고 비용 청구할 수 있다
집주인이 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필요는 없다.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임차인은 비용으로 일단 수리를 받은 다음 그 비용을 청구하거나 지급할 차임에서 공제할 수도 있다. 차임 지급을 일부 또는 전부 거절하거나, 계약을 해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비용 청구의 법적 근거는 민법 제626조의 '필요비 상환청구권'이다. 임차인은 임차주택의 보존에 관해 필요비를 지출한 때에는 비용이 발생한 즉시 임대인에게 그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여기서 필요비란 임대차계약의 목적에 따라 임차주택을 사용·수익하는 데 적당한 상태를 보존·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비용을 말하며, 임대인의 동의 없이 지출한 비용도 포함된다. 필요비의 예로는 보일러 교체 공사비, 수도 수리비용, 누수로 인한 수리비용 등이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 필요비와 유익비 상환청구권은 강행규정이 아닌 임의규정이므로, 당사자 간 특약으로 포기나 제한이 가능하다. 임대차계약 체결 시 '임차인이 원상복구를 하기로 한다'고 약정한 경우에는 필요비·유익비 상환청구가 제한될 수 있다. 계약서에 이런 조항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긴급 상황 시 대처 순서
화재나 누수 등 긴급 주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임차인이 취해야 할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사고 발생 즉시 문자·카카오톡·내용증명 등으로 집주인에게 상황을 통지하고, 그 기록을 보관한다. 집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거나 수선을 거부할 경우 임차인이 직접 수리업체를 불러 조치하되, 견적서·영수증·사진 등 지출 증빙을 철저히 남긴다.
이후 지출 비용 전액을 임대인에게 청구하거나, 다음 월세에서 공제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다. 분쟁이 이어질 경우에는 소송 없이 조정 절차를 이용할 수 있다.
소송 없이 해결하는 방법, 분쟁조정위원회
집주인과의 다툼이 계속된다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활용할 수 있다. 위원회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주택 임대차와 관련된 당사자 간 분쟁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대한법률구조공단 6개 지부와 LH 2개소, 한국부동산원 10개소에 설치돼 있다.
온라인, 우편, 팩스, 방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신청이 가능하며 수수료는 1만원에서 10만원 수준이다. 절차는 60일 이내에 처리된다. 쌍방이 조정안을 수락하면 조정이 성립하며, 강제집행을 승낙하는 취지의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 그 내용이 담긴 조정서 정본은 집행력 있는 집행권원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수선의무 분쟁도 조정 신청 가능한 사안에 해당하며, 인터넷 신청은 한국부동산원·LH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또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가능하다.
혼자 사는 집일수록 '기록'이 권리다
혼자 사는 세입자에게 주거 사고는 빠른 판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집주인이 응하지 않더라도 법적으로는 임차인이 먼저 수리하고 비용을 돌려받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다.
다만 이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려면 통지 기록과 지출 증빙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사고가 난 순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화가 아니라 문자 한 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