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이혼 대신 '졸혼(卒婚)'을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갈라서지는 않되, 각자의 방식으로 남은 삶을 사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웠던 이런 선택이 낯설지 않게 된 배경에는 몰라보게 길어진 수명이 있다.
은퇴 이후가 길어지면서 생긴 선택지
지난해 태어난 아이의 기대수명은 83.7년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60세를 기준으로 봐도 남성은 23.7년, 여성은 28.4년을 더 살 것으로 전망된다. 자녀를 다 키우고 정년을 맞은 뒤에도 수십 년의 시간이 남는 셈이다.
결혼이 평생 한 가지 방식으로 유지돼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흔들릴 만큼 그 '이후'가 길어졌다.
이 변화 속에서 졸혼은 결혼생활의 실패가 아니라 삶을 재구성하는 방법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자녀 결혼이나 은퇴 같은 생애 전환점을 계기로, 이혼에 따르는 재산분할이나 자녀와의 관계 부담 없이도 각자 원하는 삶을 살아보자는 것이다.
실제로 혼인 지속 기간 3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 비중이 전체 이혼의 17.7%로 가장 크고, 평균 이혼 연령도 매년 높아지는 추세인데, 이 흐름의 상당 부분이 이제 이혼이 아니라 졸혼이라는 대안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따로 또 같이'가 낯설지 않은 사회
이런 흐름은 결혼한 부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1인가구는 전체 가구의 36.1%인 804만5000 가구로 이미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됐고, 연령대별로는 70세 이상 비중이 19.8%로 가장 크다. 혼자 사는 고령자 가구도 213만8000 가구로 전체 고령자 가구의 37.8%에 이른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올해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2036년에는 3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결혼했든 안 했든, 나이가 들었든 젊든, '혼자 지내는 시간'을 자연스러운 삶의 형태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1인가구가 늘어나는 것도, 졸혼이 늘어나는 것도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정해진 가족 형태 안에서 평생을 함께 지내야 한다는 틀이 느슨해지고, 그 대신 각자의 생활 방식과 독립성을 존중하는 쪽으로 삶의 기준이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졸혼은 그 변화가 기혼자의 삶에서 나타나는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제도는 아직 이 변화를 다 담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 빠르게 확산되는 방식을 뒷받침할 제도는 아직 마땅치 않다. 졸혼은 어떤 법률에도 정의되지 않은 개념이라 요건이나 효력을 정한 조항이 없고, 부부가 합의했더라도 법적 혼인 관계와 그에 따른 의무는 그대로 유지된다.
그래서 졸혼을 택한 부부들은 대개 사적으로 합의서를 작성해 생활비나 재산 관리, 사생활 보장 범위 등을 정해두는데, 신분 관계 자체는 계약으로 바꿀 수 없다 보니 상속이나 부양을 둘러싼 다툼이 이후에 벌어지기도 한다.
행정 통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질적으로는 각자 따로 살며 1인가구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졸혼 부부도,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유배우 가구'로 분류된다. 이런 삶의 방식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할 통계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결국 지금의 흐름은 한 가지로 요약된다. 길어진 삶이 사람들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사는 법'을 다시 고민하게 만들고 있고, 결혼이든 아니든 그 답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도가 이 다양성을 어떻게 따라잡을지는 앞으로 지켜볼 문제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