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부분은퇴·유연연금으로 단계적 퇴직 경로 마련
정년 65세 연장 논의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해외에서는 정년의 숫자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임금과 직무, 근로시간까지 함께 바꾸는 방식으로 고령자의 계속근로를 설계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일본과 독일은 고령자의 고용을 유지하면서도 기업 부담과 청년고용 충격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고용연장 경로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 정년연장 논의가 다시 힘을 얻은 배경에는 인구 고령화와 소득 공백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2024년 12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법정 정년은 60세지만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은 현재 63세에서 단계적으로 늦춰져 2033년 이후 65세가 된다.
문제는 연공형 임금체계를 유지한 채 정년만 연장할 경우 기업의 인건비 부담과 승진 적체가 커지고 신규채용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정년연장이 단순한 퇴직 시점 조정이 아니라 임금체계와 직무, 근로시간, 청년채용까지 함께 다뤄야 하는 이유다.
일본, 정년보다 ‘계속고용’이 중심
포스코경영연구원이 발간한 ‘일본과 독일의 정년연장 정책과 주요 기업 사례’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법정 정년을 한 번에 높이기보다 기업이 정년연장과 정년폐지, 계속고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2025년 기준 65세까지 고용확보 조치를 시행한 기업은 조사 대상의 99.9%에 달했지만 방식별로는 계속고용이 65.1%로 가장 많았다. 정년연장은 31.0%, 정년폐지는 3.9%였다.
최근에는 60세 이후 근로자를 저임금 보조인력으로 활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조직 성과에 기여하는 인력으로 재정의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제철은 2021년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면서 임금체계와 인사제도를 함께 바꿨다. 기존 연공형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고 50세부터 연령급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대신 직무급 비중을 확대했다. 동일 직책 장기 재임에 따른 승진 적체를 막기 위한 인사제도와 60세 이후 근무지 제한도 병행했다.
토요타는 고령 근로자의 역할을 후배 육성이나 현장 보조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주력 인력으로 바꾸는 방향을 택했다. 재고용 후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에게 정년 전 임금의 65~80% 수준을 지급하는 유형을 도입하고, 평가와 보상도 연공 중심에서 직무·성과 중심으로 전환했다.
근골격계 질환과 생활습관병 예방, 스트레스 검사 등 건강관리도 별도의 복지가 아니라 고령 인력을 계속 활용하기 위한 인력운영 수단으로 포함했다.
독일, ‘몇 살까지’보다 ‘어떻게 은퇴할지’
독일은 법정 정년을 일률적으로 정하기보다 연금 수급개시연령인 67세를 사실상의 기준점으로 두고 있다. 대신 부분은퇴제와 생애근로시간계좌, 유연연금제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근로자가 건강과 생애계획에 따라 은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부분은퇴제는 고령 근로자가 근로시간을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기업이 임금과 연금보험 기여분 일부를 보전하는 방식이다. 초과근로 시간을 적립해 퇴직 전 휴가나 근로시간 단축에 활용하거나, 연금과 근로소득을 병행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독일 철강기업 티센크루프는 고령자의 단계적 퇴직을 청년채용과 연결했다. 고령 근로자가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부분은퇴에 들어가면 청년 근로자가 업무를 단계적으로 인수하는 ‘릴레이 모델’을 운영한다.
숙련 전수를 위한 제도도 별도로 마련했다. 핵심 기술자를 지식전수담당자로 선정해 설비 유지·보수와 제강, 압연, 안전관리 등의 노하우를 후배에게 전달하고 은퇴 전문가를 별도 인력풀에 등록해 프로젝트나 기술 자문, 교육에 다시 활용한다.
BMW는 직군별로 다른 방식을 적용했다. 생산직 고령 근로자는 자동화를 통해 반복·고부담 작업을 줄이고 품질 확인과 이상 판단 등 경험이 필요한 업무로 재배치했다. 엔지니어는 재교육과 프로젝트 관리, 기술 멘토 역할로 활용하고 디지털·전기차 분야에서는 신규채용을 확대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