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용량이 싸다고? 1인가구에겐 오히려 낭비입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32)씨는 최근 대형마트 대신 편의점에서 장을 본다. 4인 가족용 묶음 상품은 결국 절반 이상을 버리게 돼 오히려 손해라는 판단에서다. "1+1이나 대용량 할인 상품은 예전엔 무조건 득이었는데, 혼자 살다 보니 유통기한 지나서 버리는 게 더 많더라고요. 차라리 조금 비싸도 딱 필요한 만큼만 사는 게 진짜 가성비예요"
김씨처럼 생각하는 1인 가구가 이제 한국 사회의 다수가 됐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 통계로 보는 1인가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인가구는 804만5000가구로 전년(782만9000가구) 대비 21만6000가구(2.8%) 증가했다. 2021년 700만을 돌파한 이후 단 3년 만에 100만 가구 이상 늘어난 수치다.
기업이 말하는 '가성비' vs 1인가구가 원하는 '가성비'
문제는 기업들이 내세우는 '가성비'가 1인 가구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제조·유통업계는 대량 할인, 1+1 묶음 판매, 저가 대용량 패키지로 가격 경쟁력을 강조해왔다. 4인가구 중심 시장에선 통했던 전략이다.
하지만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24년 전국 만 19~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용량 vs 소포장 식품 소비 관련 조사'에 따르면, 제품 구매 시 최대한 버리지 않을 범위에서 구매하려 노력한다는 응답이 74.1%에 달했다.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려는 태도가 뚜렷했다.
특히 1인가구(25.0%) 및 2~3인가구(23.3%)의 경우 상대적으로 양이 적으면서 가격이 저렴한 '소포장 식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포장 구매 빈도가 증가했다는 응답을 가구 유형별로 보면 1인가구 32.1%, 2~3인 가구 29.7%, 4인 이상 27.5% 등으로, 구성원이 적을수록 소포장 선호도가 높았다.
"소용량이 진짜 가성비"…신선식품 72% 소용량 선택
1인가구 뉴스레터 '혼삶레터'가 2024년 10월 조사에서는 신선식품인 양파의 경우 1인가구의 72%가 소용량을, 28%만 대용량을 선택하겠다고 답변하면서 더 구체적인 양상이 드러났다.
소용량을 선택한 이유로는 '못 먹고 버리게 될까봐'가 가장 많았다. 음식이 상해서 버리는 것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게 오히려 절약이라는 것이다.
1인가구 A씨는 "대용량 식품을 사면 처리가 힘들고, 매 끼니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더라도 당장 필요한 만큼만 구입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답했다.
1인가구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진짜 가성비는 '낭비 없는 소비'다.
생활용품은 취향이 좌우…"질릴 수 있어서"
흥미로운 건 생활용품이다. 혼삶레터 조사에서 장기 보관이 가능한 세탁세제의 경우 1개짜리를 구매하겠다(52%)는 응답과 3개 묶음 상품을 선택하겠다(48%)는 응답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1개짜리 소용량을 선택한 이유는 의외였다. '보관 공간' 문제보다 "다 쓰고 나면 질릴 수 있다", "다른 제품을 써보고 싶어서" 등 '취향'을 중시하는 답변이 많았다.
1인가구 B씨는 "세제를 한 번 구매하면 한통을 다 사용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다 쓰고 나면 다른 제품을 사용하고 싶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취생 C씨는 "세제나 섬유유연제같은 기호가 어느 정도 반영되는 제품은 큰 가격 차이가 아니라면 묶음 상품으로 사지 않게 됐다"고 답했다.
HMR 시장 11조원 돌파…"간편함이 곧 가치"
1인가구의 '낭비 없는 소비' 트렌드는 시장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가정간편식(HMR) 시장은 2016년 2조3000억원에서 2023년 5조3000억원으로 2배 이상 성장했다. 2024년에는 약 7조원, 2025년에는 11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통계청이 2024년 실시한 '생활시간조사'에서도 혼밥 비율이 아침 41.7%, 점심 26.9%, 저녁 25.7%로 나타났다. 2019년과 비교하면 30대 아침 혼밥은 36.7%에서 45.5%로, 20대 점심은 26%에서 32.1%로 각각 상승했다.
대형마트들은 1~2인분 소포장 채소, 낱개 포장 과일, 밀키트 제품군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쿠팡은 프리미엄 밀키트 '쵸이닷'을, 컬리는 자체브랜드(PB) HMR '차려낸'을 출시하며 1인가구 공략에 나섰다.
장보기도 달라졌다…온라인·오프라인 병행
혼삶레터가 진행한 '1인가구 장보기 패턴' 조사에서 1인가구는 주로 쿠팡, 네이버장보기, 컬리 등 온라인 이커머스(62.6%)를 이용하면서도, 오프라인 대형마트(50.8%)와 슈퍼마켓(38.3%)도 상당한 비중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은 편리성과 시간 절약 때문에, 오프라인은 채소·육류 등 신선식품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이용한다는 것이다.
1인가구는 월 평균 2~3회 장을 보며, 월평균 장보기 비용은 10만원 이상 30만원 미만(32.7%), 5만원에서 10만원(31.5%) 등 대부분 30만원을 넘지 않았다.
"가성비의 재정의"…기업 전략도 바뀐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BoK 이슈노트'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체 소비지출에서 1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다. 이제 1인가구는 단순한 틈새시장이 아니라 주류 소비층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25 유통산업 백서'에서 올해 소비시장 키워드로 'S.N.A.K.E'를 제시하며 1인가구 영향력 확대를 강조하기도 했다.
한 솔로이코노미 전문가는 "과거엔 '얼마나 싸냐'가 가성비였다면, 이젠 '얼마나 낭비 없이 쓸 수 있냐'가 가성비"라며 "단가 경쟁에서 벗어나 실사용 편의성, 개인화 경험, 낭비 제로를 중심으로 상품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800만이 넘는 1인가구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한국 소비시장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1인 가구에게 비싼 소비는 가격이 아니라, 남는 소비다" 이 말이 새로운 시장 공식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