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직장인 김모(32)씨의 평일 저녁은 식탁이 아닌 스마트폰에서 시작된다. 배달의민족에서 저녁을, 쿠팡 로켓프레시에서 다음 날 아침거리를 시키고, 바구니에 담긴 세탁물은 런드리고 수거함에 넣어둔다.
주말에는 청소연구소 매니저가 두 시간짜리 정기청소를 하고 돌아간다. 김씨는 "돈이 더 들지만, 시간을 아끼는 쪽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씨 같은 소비자가 늘면서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소비' 이른바 시간 구매형 소비가 하나의 산업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소비자의 지출 구조도 바뀌고 있다. 배달앱 이용자 월평균 결제액은 약 10만원이다. 여기에 새벽배송, HMR, 구독, 청소, 세탁이 얹히면 1인가구 월 생활비에서 '시간 절약성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커커지고 있다.
2025년 주요 플랫폼 기업들의 성적표를 보면 이 시장이 단순한 '성장'의 단계를 지나, 이제 '수익화'의 시험대 위에 올라섰음을 보여준다.
배달 40조…배민은 매출 5조 넘겼지만 이익은 꺾였다
국내 음식 배달앱 시장은 2025년 연간 거래액 40조원 시대에 진입했다. 2024년 약 37조원에서 한 해 만에 8% 이상 불어난 결과다. 2023년 26조원과 비교하면 2년 만에 54% 커졌다.
와이즈앱·리테일 집계 기준 2025년 3월 배달앱 이용자는 2701만명으로 한국 스마트폰 이용자의 52.7%에 이른다. 이용자 한 사람이 한 달에 평균 9만7000원을 결제하고 3.7번 주문한다.
같은 해 10월 월간활성이용자(MAU)는 배달의민족 2170만명, 쿠팡이츠 1230만명, 요기요 444만명, 땡겨요 345만명 순이었다. 쿠팡이츠는 전년 대비 32% 늘었고, 공공배달앱 땡겨요는 235% 성장했다. 2024년 12월 서울 지역 카드 결제액 기준으로는 쿠팡이츠(1792억원)가 배달의민족(1778억원)을 수도권에서 처음으로 앞질렀다.
하지만 규모 확장이 곧 수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2025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회사 매출은 5조2659억원으로 전년보다 21.0% 늘어나며 창사 이래 처음 5조원을 돌파했다.
반면 영업이익은 5929억원으로 오히려 7.5% 줄었다. 매출은 두 자릿수로 뛰는데 이익은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역주행이다. 지배기업인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IT 시스템 이용료 등 특수관계자 비용으로만 761억원이 나갔고, 최근 2년간 본사 송금액은 누적 약 1조원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무료배달과 구독 멤버십이 이용자를 늘린 대신 단가와 마진을 깎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2026년 배달앱 경쟁의 승부처는 가격이 아니라 AI 기반 운영 효율화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새벽배송 15조…컬리, 창사 첫 연간 흑자
국내 새벽배송 시장은 2015년 4000억원에서 2024년 11조 8000억원으로 10년 만에 29.5배 커졌고, 2025년에는 약 15조원까지 확대된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전체 이용자는 2000만명을 넘어섰다.
업계에 따르면 쿠팡 와우 회원이 약 1500만명, 컬리 약 300만명, 오아시스·SSG닷컴·네이버쇼핑이 합쳐서 약 2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쿠팡 로켓프레시 배송 권역은 2026년 기준 전국 260개 시군구 중 182개(약 70%)로, 회사는 2027년까지 88%를 넘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컬리는 지난해 연결 매출 2조3671억원, 거래액(GMV) 3조5340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첫 연간 영업이익 흑자 131억원을 냈다. 매출원가율을 1.5%포인트 낮추고 판관비율 증가를 0.2%포인트로 묶은 구조적 수익성 개선이 열쇠였다. 월간활성이용자는 전년 대비 30% 이상 늘었고, 컬리멤버스 유효 가입자는 140만명을 돌파했다.
컬리의 이러한 성과는 새벽배송이 '돈을 써가며 판을 키우는 단계'에서 '규모로 수익이 나는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점으로 볼 수 있다. 이 산업을 떠받치는 소비자 심리는 단순한 저렴한 배송이 아니라, 장 보는 시간과 선택의 피로를 통째로 없애고 싶다는 욕구다. 즉, 시간 구매 소비의 직접적 수혜로 볼 수 있다.
HMR 7조…간편함도 산업이 됐다
요리 시간을 줄이는 쪽으로 눈을 돌리면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있다. 국내 HMR 시장 규모는 2016년 2조3000억원, 2023년 5조3000억원, 2025년 약 6조8000억원을 거쳐 2026년 7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10년 만에 세 배가 된 셈이다.
간편식은 1인가구 구조의 직접적 수혜 업종이다. 다만 같은 HMR 안에서도 흐름은 갈린다. 코로나19 시기 급성장했던 밀키트(반조리 세트) 시장은 2022년 2633억원에서 2024년 2368억원으로 3년째 뒷걸음질했고, 2025년 2분기에는 전분기 대비 13% 더 쪼그라들었다.
고물가가 길어지면서 소비자들이 '더 간편하고 더 저렴한' 완제품 HMR과 즉석식품 쪽으로 이동한 탓이다.
소용량·1인분 제품이 전체 성장을 이끌자, 외식업체들도 자사 브랜드 HMR 라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제너시스BBQ는 지난해 자사 온라인몰 매출이 전년 대비 33.6% 뛰었는데, 기존 치킨만 있던 제품에서 벗어나 치킨을 활용한 간편식을 선보인 것이 주요하다는 분석이다.
청소도 앱으로…청소연구소·미소 확장 시험대
가사 서비스 영역도 플랫폼화가 깊게 진행됐다. 청소연구소를 운영하는 생활연구소는 2017년 론칭 이후 서비스 매칭 1400만건을 달성하고, 매니저 수가 20만명을 돌파했다. 올해는 '청연'으로 간판을 바꾸고 종합 라이프케어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전략이다.
2015년 설립된 미소는 가사도우미·이사·입주청소·인터넷가입·정수기 렌탈 등 200여 개 홈서비스로 범위를 넓혀 누적 거래액 1조5000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가전 청소까지 더해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서비스는 과거 '중개소 → 도우미'였던 가사 시장을 '앱 예약 → 매니저 매칭 → 2~3시간 단위 플랫폼 고용이 가능하게 바꿔놨다. 소비자는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시간만큼만 구매한다.
노동시장의 시험대
이러한 산업의 성장 뒷편에는 새벽배송·배달·청소 매니저로 이어지는 노동의 '새벽 벨트'가 만들어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그 근로 조건과 안전 문제는 산업이 커진 만큼 사회적 비용으로 환산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새벽배송 확대를 둘러싼 정책 논쟁이 지난해 내내 이어진 것도 이 지점이다. 또 배달업계는 배민의 이익 본사 송금, 수수료 상한제 논의, 공정위 조사까지 겹치며 2026년 플랫폼 경쟁은 '시장 지배'에 '정책·공정 리스크 관리'라는 과제가 하나 더 붙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