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글루·레진스낵·숏챠 등 국내 플랫폼 가세
AI 제작 확산 속 양산형 서사·저작권 리스크는 과제
1~3분짜리 짧은 드라마가 콘텐츠 시장의 새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스마트폰 세로 화면에 맞춰 제작되는 일명 ‘숏드라마’(마이크로드라마)는 갈등과 반전을 압축해 넣고 초반 무료 회차 이후 결제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숏폼에 익숙해진 이용자들의 짧아진 시청 습관과 맞물리면서 국내외 제작사와 플랫폼, 기존 영화·드라마 업계까지 시장에 가세하는 모습이다.
시장조사업체 미디어파트너스아시아는 글로벌 마이크로 드라마 시장 규모가 2023년 50억달러에서 2030년 26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시장 규모도 16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봤다.
국내에서도 숏폼 드라마 앱 매출이 늘고 있다. 센서타워에 따르면 올해 1월 한국 숏폼 드라마 앱 시장은 역대 최고 월매출을 기록했으며, 한국은 미국·일본·영국에 이어 전 세계 4위 수준의 월매출 비중을 차지했다.
숏드라마는 기존 드라마를 짧게 자른 콘텐츠가 아니다. 처음부터 모바일 시청과 회차별 결제에 맞춰 설계된다. 회차당 길이는 보통 1~3분 안팎이며 첫 장면부터 불륜, 배신, 복수, 출생의 비밀 등 강한 갈등을 배치한다.
회차 끝에는 다음 편을 궁금하게 만드는 장면을 넣고 시청자는 짧은 러닝타임 때문에 ‘한 편만 더’를 반복하게 된다. 수익구조도 구독형 OTT보다 모바일 게임에 가깝다. 초반 회차를 무료로 공개한 뒤 이후 회차부터 광고 시청이나 코인 결제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국내 시장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비글루, 숏챠, 레진스낵, 칸타 등 토종 플랫폼이 등장했고 OTT와 제작사도 숏드라마를 새 전략으로 검토하고 있다.
스푼랩스가 운영하는 비글루는 2024년 7월 서비스를 시작한 뒤 올해 1월 한국 시장 월매출 기준 자체 최고 순위인 3위를 기록했다. 레진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월 한국·미국·일본에서 숏드라마 플랫폼 ‘레진스낵’을 동시에 선보였다. 레진코믹스와 봄툰이 보유한 웹툰·웹소설 IP를 숏드라마로 확장하는 전략이다.
콘텐츠 플랫폼 리디도 일본에서 숏폼 콘텐츠 서비스 ‘칸타’를 운영하며 웹툰·웹소설 기반 숏드라마를 시험하고 있다. 왓챠는 마이크로 드라마 전문 플랫폼 ‘숏차’를 선보였고, 티빙은 앱 내 쇼츠 탭을 통해 자체 숏폼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유명 감독과 배우의 합류도 시장의 위상을 바꾸고 있다.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은 레진스낵에서 ‘애 아빠는 남사친’을 선보였고, 이준익 감독은 웹툰 원작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을 연출했다. 해당 작품은 정진영, 이정은, 변요한 등 유명 배우가 출연한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제작사 입장에서도 숏드라마는 매력적인 카드다. 국내 드라마 제작 편수는 2022년 141편에서 2024년 약 100편 수준으로 줄었다. 글로벌 OTT는 대작 중심으로 투자하고 방송사는 제작비 부담으로 편성을 줄이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숏드라마는 제작비와 제작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신인 감독과 배우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무대로도 평가된다. 업계에 따르면 수십 회차 분량의 숏드라마 한 편을 만드는 데 드는 제작비는 1억~2억원 수준으로, 기존 드라마와 비교하면 부담이 낮다.
AI 붙은 숏드라마, 제작 속도 더 빨라진다
숏드라마 시장의 성장 속도를 더 키우는 것은 AI다. 대본 구성, 영상 생성, 배경 합성, 더빙, 번역, 마케팅 영상 제작 등 제작 전 과정에 AI가 활용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통 방식으로 15~30일 걸리던 제작 기간이 AI 도입 후 5일 이내로 줄고, 제작비도 기존의 5분의 1 수준까지 낮아지는 것으로 본다.
중국에서는 이미 AI 기반 숏폼 드라마가 대량 생산되는 단계에 들어섰다. 중국인터넷방송서비스협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출시된 약 12만8000편의 숏폼 드라마 중 95% 이상이 AI로 제작됐다. AI 숏폼 드라마 시장 규모는 240억위안, 이용자 수는 2억80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게됐다.
국내에서도 AI 활용은 확대되는 추세다. 비글루는 AI로 만든 드라마 ‘폭군 황태자의 계약 신부’와 ‘블러드바운드 루나’를 선보였다. AI는 궁궐, 판타지, 시대극처럼 실사 촬영 비용이 큰 장면을 구현하는 데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AI 결합은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우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제작비가 낮아지면 진입 장벽은 낮아지지만 그만큼 유사 콘텐츠가 쏟아질 가능성도 커진다. 중국에서는 공급 과잉으로 성공 확률이 낮아지는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데이터아이에 따르면 지난 4월 도우인에 등록된 신작 AI 드라마 4만4200편 중 조회수 1억회를 넘긴 작품은 267편으로 0.6%에 그쳤다. 또 다른 보고서에서도 스트리밍 중인 aI 작품 12만7800편 중 누적 조회수 1억회를 돌파한 작품은 150편 미만으로 집계됐다.
커지는 시장, ‘짧은 막장’ 이후 경쟁력이 관건
숏드라마가 성장한 배경에는 짧아진 영상 소비 습관이 있다. 방송통신위원회·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의 ‘2024년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숏폼 이용률은 70.7%로, 전년대비 12.6%p 올랐다.
스마트폰 영상 시청 시 선호하는 콘텐츠 유형에서도 숏폼이 41.8%로 1위를 차지했다. 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서도 무료 OTT 플랫폼 이용자 중 69.6%가 숏폼 콘텐츠를 본다고 답했다.
그러나 시장 확대가 곧 안착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국내에서는 배우 윤현민, 박하선 등을 앞세웠던 마이크로 드라마 플랫폼 ‘펄스픽’이 지난해 5월 출범 4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이용자 확보와 수익 구조 안착에 실패하면 유명 배우와 자극적 소재만으로는 시장에서 버티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콘텐츠 측면에서도 과제가 남아 있다. 현재 숏드라마는 불륜, 복수, 재벌, 계약 결혼,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 설정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짧은 시간 내에 시청자를 붙잡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유사한 서사가 반복되면 피로감도 빠르게 커질 수 있다. 중국식 공식을 그대로 가져오는 방식만으로는 국내외 시장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만들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