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52세에 퇴직, 73세까지 일하고 싶다...'일하는 시니어' 1000만 시대
[기획] 52세에 퇴직, 73세까지 일하고 싶다...'일하는 시니어' 1000만 시대
  • 김영호
  • 승인 2026.05.2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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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2025년 고령층 부가조사로 본 새로운 은퇴 모델…"퇴직은 종착지가 아닌 환승역"

“은퇴 후엔 쉬어야 한다는 말이 이제는 낯설어요”

서울 마포구에서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A씨(62)는 지난해 30년간 몸담았던 제조업 중견기업에서 정년퇴직했다. 하지만 공백기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현재 그는 낮에는 아파트 단지 경비 교대 근무를 하고, 저녁에는 배달 플랫폼을 돌린다.

하나의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보다 여러 일을 병행하는 ‘시니어 N잡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55~79세) 부가조사’는 이런 변화가 더 이상 일부 사례가 아님을 보여준다. 55세 이상 고령층 경제활동인구는 사상 처음 1000만명을 넘어섰고, 이들 가운데 69.4%는 “앞으로도 계속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희망 근로 연령은 평균 73.4세였다.

한국 사회에서 은퇴는 더 이상 노동의 종료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노동으로 이동하는 전환점이 되고 있다.

시니어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시니어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gettyimagesbank

숫자가 보여준 ‘시니어 1000만 시대’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5년 5월 기준 55~79세 고령층 인구는 1644만7000명으로 전년 대비 46만4000명 증가했다. 전체 15세 이상 인구 중 차지하는 비중은 36%에 달했다. 사실상 한국 사회 3명 중 1명 이상이 ‘고령층’ 구간에 진입한 셈이다.

노동시장 참여율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고령층 경제활동참가율은 60.9%, 고용률은 59.5%를 기록했다. 10년 전인 2015년만 해도 같은 연령대 경제활동참가율이 55% 안팎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니어 노동시장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확대되는 흐름에 가깝다.

고용의 질 측면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2025년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비정규직은 304만4000명으로 처음 300만명을 넘어섰다. 연령계층별 비정규직 비중은 60세 이상이 35.5%로 가장 높았고, 이어 50대(19.1%), 29세 이하(18.0%) 순이었다. 과거 청년층 중심으로 인식되던 비정규 노동의 중심축이 점차 6070 세대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52세에 끝나는 ‘주된 일자리’…73세까지 이어지는 노동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퇴직 시점’과 ‘희망 노동 기간’ 사이의 간극이다.

고령층의 69.9%는 이미 생애 주된 일자리를 그만둔 상태였으며, 평균 퇴직 연령은 52.9세로 나타났다. 법정 정년인 60세보다 7년 이상 빠르다. 퇴직 이유는 ‘사업 부진·폐업’(25.0%), ‘건강 악화’(22.4%), ‘가족 돌봄’(14.7%) 순이었고, 단순히 정년에 도달해서 퇴직한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반면 희망 근로 연령은 평균 73.4세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55~59세는 69.7세, 60~64세는 71.9세, 65~69세는 74.9세, 70~74세는 78.6세, 75~79세는 82.3세까지 일하기를 희망했다. 나이가 많을수록 오히려 더 오래 일하고 싶다는 응답이 나타난 것이다.

이유는 결국 생계와 연결된다. 계속 일하고 싶은 이유로는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54.4%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일하는 즐거움’(36.1%), ‘무료해서’(4.0%), ‘사회가 필요로 해서’(3.1%), ‘건강 유지’(2.3%) 순이었다.

고령층 가운데 연금을 받고 있는 비율은 51.7%였고, 월평균 수령액은 86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국민연금연구원이 제시한 1인 기준 노후 최소생활비(136만1000원)에 크게 못 미친다. 결국 많은 시니어에게 은퇴 이후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플랫폼으로 향하는 시니어…‘N잡러’의 주류가 바뀌다

이 같은 소득 공백을 메우는 통로로 떠오른 것이 플랫폼 노동이다.

통계청의 부업 참여자 집계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기준 월평균 부업 참여자는 55만2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4% 증가했다. 이 가운데 60세 이상이 19만4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대와 40대가 뒤를 이었다.

이제 한국의 ‘N잡러’는 단순히 2030 세대의 부업 문화라기보다, 시니어 세대의 생존 전략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용노동부 산하 노무제공자 통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된다. 2024년 기준 60세 이상 플랫폼·특수형태근로 종사자는 23만5301명으로, 처음으로 30대 규모를 넘어섰다. 50대까지 포함하면 플랫폼 노동의 핵심 연령층 자체가 중장년층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시니어 취업자의 산업 분포 역시 보건·사회복지, 제조업, 단순노무, 서비스업 등에 집중돼 있다. 낮에는 경비·돌봄·단순노무를 하고, 저녁에는 배달이나 대리운전을 하는 식의 ‘하이브리드 N잡 구조’가 새로운 노후 노동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니어의 N잡 도전 ⓒgettyimagesbank
시니어의 N잡 도전 ⓒgettyimagesbank

디지털 장벽은 낮아졌지만…‘역량 격차’는 남아

시니어 플랫폼 노동 확대는 디지털 환경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2024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층의 디지털 접근 수준은 일반 국민 대비 96.5%까지 올라왔다. 스마트폰 보급과 인터넷 접속 자체는 사실상 대부분의 세대에서 보편화된 것이다.

다만 실제 활용 역량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시니어의 디지털 역량 수준은 65.6%, 활용 수준은 80.0%에 그쳤다. 스마트폰 사용 자체는 가능하지만, 플랫폼 알고리즘 변화나 앱 활용 숙련도에서는 젊은 층과 격차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배달 플랫폼 주문 수락 속도, 온라인 정산 시스템 이해, 플랫폼 정책 변화 대응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결국 시니어 노동 확대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기 보급을 넘어 실제 노동시장에 필요한 디지털 적응력을 높이는 정책이 중요해지고 있다.


‘퇴직 이후’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시대

전문가들은 이 흐름을 단순히 ‘노후 빈곤의 결과’로만 해석해선 안 된다고 본다. 실제 조사에서도 ‘일하는 즐거움’ 때문에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응답이 36.1%에 달했다.

특히 전문직·사무직 경험을 가진 5060 세대에게 플랫폼은 단순 노동뿐 아니라 컨설팅, 강의, 번역, 온라인 판매 같은 새로운 형태의 경력 활용 공간이 되기도 한다. 과거처럼 한 직장에서 은퇴 후 완전히 노동시장을 떠나는 모델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일을 이어가는 ‘2막 커리어’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제도가 이런 변화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당수 시니어 플랫폼 종사자는 여전히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보호 수준이 제한적이고, 연금과 근로소득이 충돌하는 구조도 남아 있다.

특히 고령층 플랫폼 노동은 낙상·야간 사고·심혈관 질환 등 연령 특유의 위험이 크지만, 이에 맞춘 안전망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사회는 지금 ‘은퇴 후 쉼’이 아니라 ‘은퇴 후 재노동’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정년 이후에도 일하는 삶이 보편화되는 가운데,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일하느냐보다 어떤 조건에서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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