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뷰티·펫 등 개인 생활 겨냥한 니치가전 증가
대형가전 포화 속 업체들도 소형·특화가전으로 영역 확장
냉장고와 세탁기, TV처럼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대형가전이 중심이던 가전 시장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좁은 공간에 맞춘 슬림형 제품부터 구강관리, 홈뷰티, 펫케어 등 특정 생활 영역을 겨냥한 소형·특화가전까지 제품군이 빠르게 세분화되고 있다.
1·2인가구 증가와 높은 주거비에 따른 주거공간 축소, 개인화된 소비 성향이 맞물리면서 가전 소비의 단위도 ‘한 집’에서 ‘한 사람’과 ‘하나의 생활 장면’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기존 필수가전은 작고 효율적으로 바뀌는 한편, 개인의 작은 불편을 해결하는 새로운 가전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출시되는 제품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확인된다. 다이슨은 이달 초 초소형 카메라와 머신러닝 기술을 적용한 전동칫솔·구강세정기를 출시하며 오럴케어 시장에 진출했다. 앞서 지난 5월에는 휴대용 선풍기를 선보여 출시 한 달 만에 3000대를 판매했다.
LG전자는 신발관리기 ‘스타일러 슈케어’와 텀블러 세척기 ‘마이컵’, 홈뷰티 기기 ‘프라엘’ 등을 선보였고, 삼성전자도 의류관리기 기술을 활용한 ‘비스포크 슈드레서’로 신발관리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여행이나 외출처럼 특정 상황을 겨냥한 제품도 늘고 있다. 소형가전 브랜드 오아와 보아르는 최근 신세계면세점 온라인몰에 브랜드관을 열고 접이식 전기포트와 휴대용 구강세정기, 무선 고데기, 소형 충전기 등 169개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집은 작아지고, 가전은 더 세분화
소형가전 확대의 한 축에는 주거공간 변화가 있다. 높은 주거비와 1·2인가구 증가로 상대적으로 작은 주택을 선택하는 수요가 늘면서 가전에서도 공간 효율성이 중요한 구매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 거래된 전용면적 85㎡ 이하 소형·중소형 아파트는 3만5998건으로 전체 거래의 85.3%를 차지했다. 주거공간이 줄어들수록 주방과 세탁실 등 한정된 공간에 여러 제품을 배치해야 하는 만큼 제품 크기와 설치 효율성의 중요성도 커진다.
정수기는 소형화가 빠르게 진행된 대표 품목이다. 과거에는 물탱크가 필요한 역삼투압 방식이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직수 방식이 확산되면서 제품 부피가 줄었다.
세탁기와 건조기 역시 두 제품을 각각 설치하는 대신 하나의 제품으로 세탁과 건조를 처리하는 일체형 제품이 시장을 넓히고 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비스포크 AI 콤보’의 지난해 판매량은 전년 대비 약 40% 증가했으며 신혼부부를 중심으로 수요가 확대됐다.
대표적인 대형가전인 냉장고도 소형화되고 있다. 쿠첸은 최근 85L·89L·205L 용량 냉장고를 출시하며 처음으로 냉장고 시장에 진출했다. 1인 가구와 사무실, 기존 대형 냉장고 옆에 두는 ‘세컨드 냉장고’ 수요를 겨냥한 제품이다.
필수가전이 작아지는 동시에 새로운 가전은 더욱 세밀한 생활 영역으로 파고들고 있다. 신발만 관리하는 신발관리기, 텀블러 전용 세척기, 개인 구강관리기, 반려동물 자동급식기와 이동장, 헤어·피부관리 기기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 가전업체 드리미 역시 국내에서 로봇청소기를 중심으로 확보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공기청정기와 가습기, 헤어드라이어, LED 마스크, 주방가전, 펫케어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특히 퍼스널케어와 펫케어처럼 기존 대형가전 시장과 거리가 있던 영역까지 새로운 성장 시장으로 보고 있다.
가전업체들이 이처럼 생활밀착형 소형가전으로 눈을 돌리는 배경에는 대형가전 시장의 성장 한계가 있다. 주요 국가에서 냉장고와 세탁기 등 대형가전 보급률은 이미 90%를 넘어섰고 평균 교체주기도 약 10년에 달해 신규 수요를 만들기 쉽지 않다.
반면 소형·취향형 가전은 상대적으로 교체주기가 짧고 복잡한 설치가 필요하지 않아 구매 진입장벽이 낮다. 업체 입장에서는 기존에 확보한 모터와 스팀, 센서, 인공지능 기술 등을 다른 제품군에 적용하기에도 유리하다.
다이슨이 청소기에서 축적한 초소형 모터와 유체역학, 카메라 기술을 휴대용 선풍기와 구강관리기에 활용하고, LG전자가 세탁기와 식기세척기에서 사용한 모터·스팀 기술을 신발관리기와 텀블러 세척기로 확장하는 식이다.
기존 전문 가전업체들의 사업 경계도 흐려지고 있다. 밥솥 업체 쿠쿠는 헤어드라이어와 고데기, 피부관리기 등 뷰티가전으로 제품군을 넓히고 있으며 정수기로 성장한 코웨이는 가정용 의료기기 시장까지 진출했다. 로봇청소기로 국내 시장에 자리 잡은 로보락과 드리미도 세탁건조기와 정수기, 공기가전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모르도르 인텔리전스는 국내 소형가전 시장 규모가 현재 약 43억1000만달러에서 연평균 3%대 성장해 2031년 50억3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가전 시장의 경쟁 기준도 개별 제품에서 소비자의 생활 전반으로 옮겨가고 있다. 좁은 집에는 작고 효율적인 필수가전을 들이고, 개인의 취향과 생활습관에 맞춰 필요한 제품을 추가하는 소비가 늘면서 가전의 범위도 더욱 넓어지는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