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게 많이 사는 것이 반드시 경제적인 것은 아니다. 혼자 사는 소비자에게 대용량 식재료는 끝까지 소비하지 못하면 오히려 낭비가 되고, 저렴한 상품을 찾아 여러 곳을 비교하는 시간도 비용이 된다.
2027년을 전망하는 주요 트렌드 서적들이 ‘라이프 ROI’, ‘영점소비’, 개인화와 취향을 주요 변화로 지목한 가운데 이런 흐름은 1인가구 소비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7》이 제시한 ‘라이프 ROI’는 돈뿐 아니라 시간과 체력, 감정을 포함해 투입 대비 만족을 계산하는 소비를 뜻한다. 《2027 트렌드모니터》의 ‘영점소비’ 역시 선택지를 무작정 늘리기보다 실패 가능성을 낮추고 자신에게 적합한 대상을 선택하려는 흐름에 주목한다.
혼자 주거비와 생활비를 부담하고 장보기부터 조리·청소까지 일상에 필요한 일을 직접 처리해야 하는 1인가구에게는 이 같은 계산법이 특히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1인가구 소비, 가격보다 ‘생활비용’ 따진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 통계로 보는 1인가구’에 따르면 2024년 1인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168만9000원으로 전체 가구 평균의 58.4% 수준이었다.
금액은 작지만 지출 구조는 다르다. 1인가구 소비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은 주거·수도·광열 18.4%였고 음식·숙박 18.2%, 식료품·비주류음료 13.6% 순이었다. 전체 가구보다 주거와 음식·숙박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혼자 살면 가구 구성원과 나눌 수 있는 비용이 줄어든다. 월세와 관리비, 가전제품처럼 가구 단위로 발생하는 비용도 한 사람이 부담해야 한다.
이 같은 지출 구조를 고려하면 1인가구에서는 제품 가격 외에 시간과 공간, 폐기 부담까지 구매 판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100g당 가격이 저렴한 대용량 식재료라도 다 먹지 못해 버리거나 냉장고 공간을 오래 차지한다면 실제 효용은 낮아질 수 있다. 반대로 단위가격은 다소 높더라도 한두 번에 소비할 수 있고 손질 과정까지 줄여주는 상품이라면 생활 전체의 부담은 낮출 수 있다.
2027년 트렌드로 제시된 ‘라이프 ROI’를 1인가구 소비에 적용할 때 가격표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소용량 소비 확대…핵심은 ‘작게’보다 ‘덜 버리고 덜 쓰는 것’
이 같은 변화는 유통채널 전반에서 확인된다.
편의점에서는 소량 신선식품과 정육 상품의 판매가 늘고 있다. GS25의 올해 1~7월 축산가공 상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0% 증가했고, CU에서도 같은 기간 과일·채소 매출이 19.7%, 정육 매출이 23.4% 늘었다.
대형마트에서도 절단·소용량 상품의 수요가 증가했다. 이마트의 600g 조각 수박은 지난 6~7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약 51% 증가했고, 롯데마트·슈퍼의 1~7월 소용량 조각과일 매출도 89% 늘었다.
GS25는 200g 단위 ‘한끼 양념육’을 판매하고 있고, 버섯·상추·대파·마늘 등을 소량으로 구성한 ‘한끼 딱 채소’는 누적 판매량 6만개를 넘어섰다.
공통점은 단순히 포장 크기를 줄였다는 데 있지 않다. 필요한 양을 구매함으로써 보관과 손질, 남은 식재료 처리에 드는 부담까지 줄이는 상품이라는 점이다.
과거 가성비가 ‘같은 돈으로 얼마나 많이 살 수 있느냐’에 가까웠다면 1인가구에서는 ‘얼마나 낭비 없이 사용할 수 있느냐’가 또 다른 판단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무조건 싼 것보다 ‘내가 원하는 곳에는 쓴다’
1인가구를 가격만 좇는 소비층으로 보는 것도 맞지 않는다.
KB금융경영연구소의 ‘2026 한국 1인가구 보고서’를 보면 계획적으로 소비한다는 응답은 47.2%로 즉흥적 소비 24.1%보다 높았다. 가성비를 중시한다는 비율은 55.4%였지만 자신의 취향을 우선한다는 응답도 51.1%에 달했다.
브랜드와 신뢰를 우선한다는 응답은 19.0%였고 혼자 여가를 즐기는 것을 선호한다는 비율도 52.2%로 절반을 넘었다.
가격을 아끼면서도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역에는 돈을 쓰는 선택적 소비가 동시에 나타나는 셈이다.
식사는 간단하게 해결해도 취미에는 돈을 쓰고, 주거 면적은 줄여도 침구나 가전에는 투자하는 식으로 개인마다 지출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이 부분에서 《2027 트렌드모니터》의 ‘영점소비’와 개인화 흐름이 1인가구 소비와 연결된다.
함께 사는 가족 구성원과 취향이나 구매 결정을 조율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만큼 자신의 생활방식과 필요가 곧 구매 기준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1인가구용 제품’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보다 연령과 소득, 직업, 건강 상태, 취미에 따라 다시 나눠진 시장을 봐야 한다.
큰 돈 결제하기 전에 소소한 경험부터
2027년 1인가구 소비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변화는 ‘소용량 경험’이다.
처음부터 큰돈이나 긴 시간을 투입하기보다 적은 비용으로 먼저 경험한 뒤 자신에게 맞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상품에서는 미니 사이즈나 체험용 제품이, 서비스에서는 단기 이용이나 체험형 프로그램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
1인가구는 구매 결정의 자유도가 높은 만큼 새로운 상품을 빠르게 시도할 수 있지만, 동시에 실패한 선택의 비용도 혼자 감당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큰 구매를 요구하기보다 낮은 비용으로 진입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고 이후 반복구매나 장기 이용으로 연결하는 방식이 중요해질 수 있다.
1인가구라는 하나의 시장은 없다
개인화가 강해질수록 기업들이 주의해야 할 것도 있다.
1인가구를 하나의 소비집단으로 묶어서는 설명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상 1인가구에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부터 구매력을 갖춘 중장년층, 은퇴한 고령층까지 모두 포함된다. 소비 여력과 주거형태, 건강 상태, 생활시간이 서로 다르다.
국가데이터처의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2052년에는 1인가구가 전체 가구의 41.3%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 가운데 70대 이상이 42.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1인가구 시장이 커지는 동시에 내부 구성은 더욱 다양해진다는 의미다.
혼자 사는 청년에게 중요한 것은 가격과 편의성일 수 있지만 중장년 1인가구에는 건강관리와 여가, 고령 1인가구에는 안전과 돌봄이 더 중요한 구매 기준이 될 수 있다.
AI 기반 개인화가 확산되면 이런 구분은 더 정교해질 수 있다. 같은 1인가구라도 소비 이력과 생활시간, 관심사에 따라 전혀 다른 상품과 서비스를 추천하는 방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향후 1인가구 시장의 경쟁은 단순한 ‘1인분 만들기’에서 개인의 생활조건을 얼마나 세밀하게 읽느냐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2027년 혼삶 소비…‘작게 만든 제품’에서 ‘생활을 덜어주는 제품’으로
2027년 트렌드 전망을 1인가구에 대입하면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라이프 ROI는 돈뿐 아니라 시간과 체력을 계산하게 하고, 영점소비는 실패 가능성이 작은 선택을 요구한다. 여기에 소용량 상품과 작은 경험, 개인화가 결합한다.
이는 단순히 불황 때문에 소비를 줄인다는 얘기와는 다르다.
필요하지 않은 곳의 지출은 줄이는 대신 자신의 만족도가 높은 분야에는 돈을 쓰는 식으로 선택과 집중이 강해지는 것이다.
이미 유통시장에서는 소포장 신선식품과 손질 부담을 줄인 상품의 판매 증가가 나타나고 있고, 1인가구 조사에서는 가성비와 개인 취향을 동시에 중시하는 모습도 확인된다.
과거 1인가구 상품의 핵심이 기존 상품의 크기와 용량을 줄이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혼자 사는 사람이 이 상품을 사용하면서 들이는 돈·시간·공간·수고를 얼마나 줄여줄 수 있는지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