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韓日 무역전쟁③: 일본 소재 5천억원이 우리의 170조원 수출 발목 잡아
[기고] 韓日 무역전쟁③: 일본 소재 5천억원이 우리의 170조원 수출 발목 잡아
  • 김도형 한림대학교 일본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9.08.2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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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반도체 등 수출규제로 한일 경제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본의 반도체 등 수출규제로 한일 경제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지난 50년 양국관계는 외환위기 직후 2~3년을 제외하면 순탄했던 순간이 없었다. 빈번한 과거사 문제, 독도 관련 망언과 반성 사과 요구에 영일이 없었다. 그러나 역사 정치 사회적 갈등이 수출규제와 같은 경제 안보문제로 비화한 사례는 흔치 않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고 상호 절차탁마의 관계를 중시해 왔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이번 경제제재가 강제징용판결에 대한 대항조치가 아니며 양국관계의 심각한 훼손에서 비롯되었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그러다 최근 3개 핵심소재 중 에칭가스의 제3국으로 불법 유출 우려를 들어 수출관리를 엄격하게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례적인 수출규제는 경제보복의 차원을 넘어 안보문제로 비화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제 과거사, 영토문제 갈등이 드디어 현실 경제와 안보적 색채를 띄게 되면서 미래로 파급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대일통상마찰과 효율성 차원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7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수입규제에 가까운 수입선다변화와 국산화정책을 통해 중급 부품소재는 수입대체가 가능했지만 이들 품목은 끝내 수입을 대체하지 못했다.

2000년대 들면서 글로벌라이제이션과 IT 혁명을 계기로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망과 생산공정의 분절화가 진행되면서 동북아 부품소재 분업은 고도화 되었다. 즉 한국은 일본의 고급부품소재를 수입하여 조립 가공한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면 중국은 최종제품으로 만들어 이를 구미선진국은 물론 한일에도 공급함으로써 고기술-고부가가치-고임금을 실현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동아시아는 EU 제품간 분업권의 효율성을 능가하는 고도의 공정간 분업권을 구축했고 동시에 일본의 3개 부품소재의 고급화도 가능했다.

당연히 이들 핵심부품소재가 우리의 대일역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일무역불균형 시정을 위한 수입선 전환이나 수입대체는 오히려 개별기업의 생산 효율성과 비즈니스 모델구축에는 장애로 작용 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수출 주력제품인 반도체, 스마트 폰, TV 업체가 필요로 하는 핵심부품과 소재를 일본정부의 수출관리 아래 두고 신고 절차를 까다롭게 하면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대체가 지극히 어려운 상황에서 생산 수출 납기 지연, 대외신용도와 수출품고급화 전략에 일대 차질을 빚게 될 것은 자명하다. 당연히 우리 대기업 중간재의 대일수출도 축소될 것이므로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기업의 생산에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확실히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는 조립대기업에는 리스크, 국내 유관기업들에는 기술개발·고도화의 기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대기업·중견중소 협력기업으로 연결되는 기업간 리스크 쉐어링과 장기거래 관행마저 훼손되면 기회는 줄고 리스크는 확산될 것이다.
  
2017년 기준 한국 반도체 소재 국산화율은 50.3%, 일본의존도는 80%에 달한다.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18.2%에 지나지 않는다. 2018년 10월 SK하이닉스가 총 20조원을 투자한 낸드플래시 메모리(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보존되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은 4000대 이상의 반도체 생산 장비가 투입되었다.
그러나 국산은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최첨단 장비는 일본과 미국, 네덜란드산이다. 세계반도체 장비 시장 점유율은 2017년 기준으로 미국(44.7%)이 일본(28.2%)보다 높지만 한국은 미국보다 일본 장비를 선호하고 있다. 국내반도체 업체 현장의 공정상 일본산이 미국산에 비해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반도체 소재와 장비의 대일의존도가 매우 높다. 특히 이번 3대 핵심소재인 플루오인 폴리이미드는 93.7%, 포토리지스트는 91.9%, 불화수소는 43.9%로 매우 높고 반도체 장비와 부품, 고급 실리콘 웨이퍼, 플라스틱 필름과 동 제품의 대일의존도도 평균 30%~40% 수준에 이른다.

대일수입의존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이들 소재 부품 장비 공급업체들은 외국인투자를 통해 국내에 자회사 관련 회사를 한국의 대기업과 합작 혹은 단독으로 설립하여 대일 대미 대중 수출입 활동을 오랜 기간 해 오고 있다. 그 결과 양국기업간에는 거미줄과 같은 연결망이 구축되어 있다.

이들은 해외이전이 극히 어려운 이른바 일본내 거점으로서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망의 허브를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진원지에서 마그마가 분출하듯 순식간에 한국 전역의 Life Line(생명선)을 단절시킬 수 있다. 2011. 3.11 동아시아 대지진과 쓰나미에서 그리고 타이 홍수 사태에서 일본은 이미 그 쓰라린 경험을 한 바 있다. 2010년 다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분쟁시 중국이 자국산 희토류 수출금지에 따른 후유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동아시아 분업구조에 대한 왜곡을 불러올 M 7.0 강진임에 틀림없다.
 
역대 정부는 이러한 일방적인 대일수입의존이 가져올 리스크를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기업현장이 가장 잘 인지하고 있는 바이다. 그래서 일본과 GATT로부터 불공정무역행위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대일수입규제,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글로벌라이제이션과 IT혁명의 진전으로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를 위한 특정산업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되지 못했고 반도체 생산의 특성상 기술적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중급 정도 기술의 국산화가 가능한 시점에서 이들 보호주의적인 산업정책에서 탈피하여 시장중심의 산업지원정책으로 선회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업종의 시장적 기술적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김도형 한림대학교 일본학과 겸임교수

※ 이 기사는 본지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