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韓日 무역전쟁⑤: 겉 다르고 속 다른 양국의 국가 주도 과잉개입
[기고] 韓日 무역전쟁⑤: 겉 다르고 속 다른 양국의 국가 주도 과잉개입
  • 김도형 한림대학교 일본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9.08.2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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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인 8월 1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광복 74주년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회 및 국제평화행진에 참석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광복절인 8월 1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광복 74주년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회 및 국제평화행진에 참석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본의 추가 보복이 이어질 경우 '상응조치'로서 우리 주요 품목의 대일 수출 제한, 일본산 수입품 추가 관세 부가 나아가 한국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등 강경대응도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동안 WTO 이사회에서 일본 수출규제의 부당성 호소,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한 WTO제소 준비 등 연성전략에 치중했다.

그러나 일본이 설정한 강제징용 관련 '제3국 중재위원회 구성'에 대한 우리 정부의 답변 기한인 7. 18일을 넘기는 것이 확실해지고 7. 16일 한국 대통령 발언은 강경했다. 일본의 수출제한이 반세기간 축적해 온 양국 협력의 틀을 깨고 우리경제의 성장을 가로 막는 행위이며 전략물자 밀반출 의혹 제기는 우리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결국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며 사태의 장기화에 대비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양측의 강대강 대응은 결코 현명하지 못하는 것을 양측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번 일본의 조치가 양국은 물론 미국경제와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양자간 외교적 해결을 원칙을 강조하면서 개입을 자제했던 미국은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를 내비치자 동맹을 중시하는 7월말 한일 양국이 ‘분쟁 중지 협정(standstill agreement)’에 서명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한일 갈등이 더 커지는 걸 막기 위해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는 한국의 대일수출입 축소와 일본의 대한수출 감소로 양국간 무역투자는 축소균형으로 갈 공산이 커졌다. 국교정상화 이후 50년간 양국이 줄곧 지향해 온 무역투자 확대균형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2012년 이후 축소일로에 접어든 양국간 무역투자 활동에 대못을 박고자 작심한 셈이다. 세계 최대의 최상이 효율적인 동아시아 공정분업권에 대한 심각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왜 이러한 정책선택을 한 것일까.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일본기업의 한국내 자산동결, 매각, 현금화 조치에 따른 자국 민간기업 피해에 대한 사전 대응조치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후 강화되고 있는 시대착오적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에 대한 편승이다. 셋째, 최근 화웨이 사태에서 보듯 미국의 대중 전략기술정보 규제를 위한 미일의 국제공조체제 구축이다. 이를 통해 한미일 동맹체제를 강화하고 북중러 대륙세력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일본은 오랜 동안 구미선진국의 보호주의적 무역정책에 반기를 들고 다자와 양자 협상에서 룰 셋터로서의 자국의 역할을 자임해 왔다. 90년대 중반부터 대두되기 시작한 지역주의에도 불구하고 다자주의와의 병행을 기본으로 한 개방적 지역주의가 일본의 대외경제정책의 기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TPP(환태평양자유무역협정)를 일방적으로 파기하자 일본은 미국을 대신하여 환태평양자유무역권의 리더로서 위상을 다지려는 속셈이다.

여기에 대중유화 제스처도 가미되기 시작했다. 이번 오사카 G20 공동성명에서도 스스로 자유무역과 공정경쟁을 위한 규범 추동자로서의 기존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조치는 G20 정상회의 직후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이 귀국길에 오르자마자 터져 나왔다.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 행동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일본 측의 문제만 아니다. 지난 정부가 2015년 말 일본정부와 가까스로 도달한 위안부 문제 합의는 일본군의 관여, 일본정부의 책임통감, 아베총리의 사죄와 반성을 담았고 일본 정부예산(10억 엔)으로 ‘화해와 치유 재단’설립하고 일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했다. 일부는 일본정부의 사죄와 반성이 불충분했고 본인들과 위로금에 대한 사전 협의도 없었다는 이유로 위로금 수령을 거부했다. 이번 정부 들자마자 위안부 합의를 검증하고 피해자 우선주의를 명분으로 재단을 해산시키면서 일본에는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양국간 신뢰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위안부문제는 수면 아래로 잠복했지만 이윽고 2018년 10월 대법원은 전원합의부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 인정, 징용피해자 개인피해보상 판결을 통해 피해자에게 1억 원 상당의 배상을 명했다. 이미 국가보상을 명시한 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자체를 근본부터 흔들었다. 당연히 국제법을 무시한 처사로서 국가간 신뢰를 헤치는 일방적 행위에 대한 일본측 반응은 격렬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정부는 이미 1975년 징용피해자 보상을 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강제동원 부상자를 제외하는 등 도의적 차원에서 보상이 불충분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2005년 1월 40년 만에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되자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문서공개 요구가 법원이 받아들였고 후속대책을 위한 민관공동위원회가 발족했다. 당시 쟁점이었던 국가간 협상에 의한 개인 청구권 소멸여부를 두고 현 대통령(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개인의 참여나 위임이 없는 상태에서 국가 간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을 어떤 법리로 소멸시킬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민관공동위의 결론에 따라 2005년 노무현 정권은 위안부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지만 강제징용문제는 개인청구권은 유효하지만 65년 협정에 따라 무상 3억 달러에 반영된 것이므로 행사가 어렵다고 보고 2007년 특별법으로 정부예산으로 위로금과 지원금 형태로 추가보상에 착수하는 것으로 정리한 것이었다. 2015년까지 징용피해자 7만 2,631명에 6,184억원이 지급되었다. 일본 역시 기본조약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으므로 정부와 기업의 배상의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한일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 청구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파기환송 판결이 나왔고 2018년 10월 대법원은 그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2005년 당시 민정수석(현 대통령)은 “국가간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어떤 법리로 소멸될 수 있는지 검토하자”고 문제를 제기한지 13년 만에 확정판결을 얻어낸 셈이다.

이후 징용공 피해보상 판결은 줄을 이었고 해결방안은 찾지 못한 채 양국관계는 마주달리는 열차와 같이 언제 파열되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만치 표류를 거듭해 왔다. 양국정부는 각자의 국내 상황 때문에 선제적 행동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한국 정부는 삼권분립의 입장에서 대법원판결이라는 사법부 결정에 대한 관여 문제와 피해자들의 반발을, 일본정부는 기본조약으로 완결된 사안으로 배상불가는 물론 배상범위, 대상자의 신원파악에 대한 확정불가와 한국이외 국가로의 확대가능성을 우려한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공히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양국 전문가들도 세 가지 안을 둘러싸고 설왕설래했다. ① 징용공 관련 이른바 가해 일본기업과 한일협정 당시 일본의 경제협력자금으로 설립된 한국기업과 양국 정부가 참여하는 기금설립, ② 한일협정에 명시된 제3국 중재위 회부, ③ 국제사법재판소(IJC) 위임 등이 그것이었다. 한국은 기금의 경우 한국정부와 기업 참여가 대법원 판결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일본은 기업의 참여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행동에 옮기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중재위와 국제사법재판소 위임 결정 역시 외교적 협상과 대화의 실패를 대내외적으로 공인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제3자 결정을 정부는 물론 정작 피해 당사자들의 최종 수용여부가 크게 의문시 되었다. 더욱이 양국간 쟁점이 발생할 때마다 제3자 위임이라는 선례를 만들 우려가 제기되었다.

김도형 한림대학교 일본학과 겸임교수

※ 이 기사는 본지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