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韓日 무역전쟁⑥: 겉 다르고 속 다른 양국의 국가 주도 과잉개입
[기고] 韓日 무역전쟁⑥: 겉 다르고 속 다른 양국의 국가 주도 과잉개입
  • 김도형 한림대학교 일본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9.08.2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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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2018년 말 경만해도 일본의 유력한 지한파 인사는 일본기업의 피해보상 참여 가능성을 귀띔했었다. 대화와 해결의 문은 열려 있었다. 그러나 한국 측은 아예 이를 무시,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대일관계 개선은 이 정부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저만치 밀려나 있었다.

일본 측은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 등 대항조치를 거듭 시사하면서 5. 20일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거한 중재위 방안을 정식으로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끝내 거부당했고 혐한분위기는 고조되고 친한 파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반일감정도 격해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양국 정치권은 이를 이용하기 마련이다.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가 나온 이상 한국 정부는 그동안 전문가 혹은 일부 여권에서 검토해 오던 소위 1+1(일본기업과 한국기업), 2+1(한국기업과 정부 및 일본기업), 2+2(양국기업과 정부)에 의한 출연금, 강제징용특별법 제정, 일본이 요구하는 '제3국 중재위'나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 제안 모두 수용불가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에 일본정부는 수출규제는 경제보복이 아니며 7. 18일까지 한국이 제3국 중재위 구성에 응하지 않으면 추가 보복에 나설 것을 예고하고 나섰다. 우리 외교부 당국과 청와대는 일본기업의 직접배상 외는 다른 해법이 없다는 강경자세였다.

당면 수출규제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WTO 일반이사회 등을 통해 WTO 규정 위반이며 WTO 제소를 위한 법적근거를 마련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물론 정부 실무부서와 정관계를 통해 규제 철폐를 위해 대일 물밑 접촉은 시도해 왔지만 시원한 해법을 얻지 못한 채 극히 구체성이 결여된 중장기 대일정책의 필요성만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시종하고 있다.

일본은 이번 대한 수출규제와 화이트국가 제외조치를 안보관련 수출관리 차원으로 단순화하려 하고 있지만 속내가 드러나 보이는 졸속한 땜질 처방이다. 한국 역시 유사한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상대국에 미칠 영향은 과대평가하고 자신에 대한 부메랑은 과소평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민간기업과 소비자가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실상은 다음 여섯 가지다.

첫째,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한국의 수입업체가 받을 영향을 과대 평가했다. 물론 단기적인 피해는 불가피하지만 일본의 수출기업 역시 주요한 고객을 상실할 것에 대비하는 만큼 한국기업이 받을 직접적인 피해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 한국기업은 해당소재가 필수품목이지만 일본기업 역시 한국기업이 거의 유일한 고객이다. 실제 일본기업은 중국진출 관련기업으로 하여금 동 소재를 현지 생산하여 한국으로 역수출하는 방법을 고려중이다. 규제를 우회하는 흔한 글로벌 네트워크 활용방안이다.

둘째, 최근에는 한국 소비자들의 일본상품 불매, 일본 관광 일정과 한일 직행편 축소, 지자체간의 기존 문화교류행사 취소 등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반기업과 시민사회 대응을 보고 있어 공공외교의 틀마저 무너지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일본마저 예상치 못한 것이다.

한국정부는 6. 19일 뒤늦게나마 양국기업이 자발적으로 강제징용자 위로 자금을 염출하여 원고 측과 화해하는 1+1 안을 제시했다. 대법원판결에도 불구하고 한일기본조약이라는 국제법 틀을 지키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중재위 개최를 주장하며 거부했다. 이미 7. 21일 참의원 선거 필승을 위한 보수파결집 등 국내정치적 셈법을 굳힌 뒤였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이를 크게 반영하지는 못했다.

셋째, 한국내 자산매각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강제징용 기업이 3개 품목 생산 수출업체와 어떤 기업 간 관계(지분보유, 인력파견 등)에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미스비시 중공업, 신일본스미토모, 후지코시가 3개 핵심부품소재 생산 수출기업과 도대체 어떤 관계에 있는가? 100년 역사의 세계적 정밀화학 기업 신에츠(新越)가 강제징용에 관련된 기업그룹인가?

2012년 국무총리실 산하 강제동원 피해위원회가 발표한 이른바 강제징용 전범기업 299개 업체와 직간접으로 얽혀 있는 자산이 가령 압류된다고 하자.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대일핵심부품소재 품목과 이들 기업의 대한 수출입활동을 여하히 연계하여 대한수출을 계속 규제하려 한 것인가. 대한규제가 일본국내는 물론 동아시아 서플라이 체인 전체에 미칠 악영향은 차치하고 가해기업의 활동과 규제대상 품목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것은 지난한 일일뿐더러 무모하다. 실제 많은 일본기업들이 느닷없는 정부의 강경조치에 안절부절 하며 일본 언론도 이를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넷째, 일본정부는 과연 개별기업 그것도 강제징용관련 피해와는 무관한 기업의 수출을 규제할 권한을 과연 갖는 것인가. 나아가 3개 부품소재의 대 삼성 SK  하이닉스, LG 수출 축소와 동시에 이들 조립제품의 대일 및 대세계 수출이 축소될 경우 발생할 소비자와 중간생산자의 손실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WTO가 인정하는 세이프 가드(산업피해구제제도) 등 기존의 무역구제(trade remedies)로도 손 쓸 수 없는 신종의 산업피해이다.

다섯째, 미국의 하웨이 규제에 보다 효과적으로 동참하기 위해 반도체 강국 한국의 차세대 반도체 공정을 마비시켜 일본 라이벌 기업의 비교우위를 강화하고 동시에 대중기술 유출을 차단하려는 정치적 의도이다. 그러나 이들 3대 핵심부품소재 대한 수출-한국의 중간재 조립생산-대중 중간재와 기술수출에 이르는 글로벌 가치사슬의 전모를 정부가 파악하기는 역부족이다.

여섯째, 일본의 핵심부품소재는 선린우호국의 공유자산이지 군사용이나 진배없는 전략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일수출규제 조치도 대일 대항조치로서는 명분이 약하며 실효성에도 의문이 간다. 이러한 상호 대항조치는 최근 G20 공동성명에서 제창해 온 자유무역과 공정경쟁을 위한 규범 추동자로서의 역할 천명에 역행하는 행위이다.

특히 일본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에 대한 경고를 오사카 G20 공동성명 문구에 끝내 반영하지 않은 속내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미국에 이어 일본마저 WTO다자주의에서 이탈하면서 기능부재에 빠진 WTO 제소 역시 판결까지는 3년 이상이 소요되는 등 이번 사태해결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행정당국의 면피용일 뿐이다.

김도형 한림대학교 일본학과 겸임교수

※ 이 기사는 본지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