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외로워서 죽을 수도 있다." 영국 의회가 2017년 이 메시지를 공식 문서에 새겨 넣은 뒤 세계는 외로움을 공적 영역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8년, 영국과 일본은 정부 차원의 전담 조직을 운영 중이다. 한국은 아직 중앙정부에 전담 장관을 두지 않았지만, 서울시가 2025년 지자체 최초로 고독·돌봄을 맡는 조직을 신설하며 판을 먼저 깔았다.
2018년 영국, 세계 최초 '외로움부 장관'
영국은 2018년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신설했다. 한국으로 치면 '차관급'에 해당하는 자리다. 정부는 같은 해 외로움 실태조사 결과를 내놓았고, 이를 토대로 2019~2023년 5개년 전략 '연결된 사회(Connected Society)'를 발표했다. 이 전략은 ①외로움에 대한 낙인 완화 ②지속적인 변화 추동 ③외로움에 대한 지식·근거 축적을 3대 목표로 삼았다.
영국 외로움부가 가장 공들인 영역은 '인식 개선'이었다. 2019~2021년 민간단체와 함께 'Let's Talk Loneliness(외로움에 대해 말하자)' 캠페인을 벌여 단편영화·광고·포스터를 배포했고, 지자체·공공기관이 외로움 고위험군을 발굴할 수 있는 공통 지표를 마련했다. 외로움이 개인의 감정 문제가 아니라, 건강·고용·빈곤과 맞물린 공공 의제라는 합의를 먼저 만든 것이다.
2021년 일본, '고독·고립 담당 대신' 신설
일본은 2021년 고독·고립 대책 담당 대신(担当大臣)을 임명하고 총리실 산하에 고독·고립 대책 담당관실을 설치했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통계를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일본은 코로나19 이후 자살·히키코모리 지표가 다시 악화하자, 전담 조직을 공식화했다.
일본 정책의 특징은 '발굴→연결'이라는 두 단계 접근이다. 발굴 단계에서는 전국의 고독·고립 고위험군을 직접 찾아내기 위한 데이터 연계·지원센터 확충이 이뤄졌고, 연결 단계에서는 지역 자원봉사 단체·NPO·자치체가 협력해 대화 상대·취미 모임·고용 연계 같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보건복지 연구기관들이 영국 모델과 일본 모델을 함께 분석하는 보고서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한국은 서울시 '돌봄·고독정책관'으로 출발
한국은 아직 중앙정부에 외로움 전담 장관을 두지 않았다. 대신 서울시가 2025년 복지실 산하에 '돌봄·고독정책관'을 신설하며 지자체 단위로는 처음 전담 조직을 만들었다. 서울시 측은 이 조직이 영국 외로움부, 일본 고독·고립 담당관실을 벤치마킹해 설계됐다고 밝혔다.
서울시 돌봄·고독정책관은 1인가구 지원센터·복지관·동주민센터를 잇는 '이중 안전망'을 기본 축으로 하고, 여기에 AI·IoT 기반 스마트 안부확인, 소셜다이닝 같은 기존 1인가구 사업을 하나의 컨트롤타워 아래 묶었다.
2026년 복지실 업무계획에는 중장년 1인가구 행복한 밥상 3500명, AI·IoT 안부확인 8500가구 확대 같은 구체 수치가 포함됐다. 정책을 개별 사업별로 분산 운영하던 기존 구조와 달리, 고독·고립을 명시적 목표로 내걸고 움직이는 점이 차이다.
세 나라의 공통 코드: '연결(connection)'
영국·일본·한국(서울) 모두 정책 표현의 중심에 '연결'을 놓는다. 영국은 '연결된 사회', 일본은 '연결의 기회 확대', 서울시는 '이중 안전망을 통한 연결·돌봄'이라는 식이다. 개인이 겪는 외로움을 감정으로만 보지 않고, 관계망·일자리·주거·의료 같은 구조적 요인과 엮어 다루겠다는 신호다.
다만 세 나라 모두 과제가 만만치 않다. 영국은 코로나19 이후 만성 외로움 인구가 다시 늘고 있다는 지표를 받아들고, 5개년 전략 이후의 후속 계획을 다듬는 중이다. 일본은 히키코모리 고령화라는 새로운 축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은 중앙정부 차원의 법·조직이 여전히 부재하고, 지자체 단위 서비스의 지역 편차가 크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외로움도 정책의 대상'이라는 합의가 먼저다
국내에서도 일부 전문가와 시민사회는 '한국형 외로움 장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리서치·KIHASA 등 연구기관이 외로움 실태 조사를 정기적으로 내놓는 가운데, 실제 입법까지 이어지려면 '외로움을 공공 의제로 다룰 근거'를 만드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인가구 비중이 전체 가구의 3분의 1을 넘어선 시대, 고독·고립은 개별 복지 서비스의 부수적 주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정책 영역이 되어 가는 중이다. 서울시의 '돌봄·고독정책관'이 지자체 실험으로 그칠지, 다른 광역·중앙 단위로 확산할지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