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사람에게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항우울제를 처방하거나, 상담을 권유하는 것이 답일가. 영국은 세 번째 선택지를 만들었다.
지역 텃밭 가꾸기, 요리 교실, 독서 모임, 걷기 클럽 등 의사가 이런 활동을 처방전처럼 써주는 제도가 2018년 영국 NHS(국가보건서비스) 안에 공식 편입됐다.
이른바 ‘소셜 프레스크라이빙(사회적 처방)’이다.
'소셜 프레스크라이빙'이란?
소셜 프레스크라이빙에서는 지역 자선단체, 사회복지 및 의료 서비스 등 지역 기관이 사람들을 ‘소셜 프레스크라이빙 링크 워커’에게 연결한다. 링크 워커는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며 개인 맞춤형 돌봄 및 지원 계획을 함께 만들고, 사람들이 스스로 건강과 웰빙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링크 워커는 의료 전문가가 아니다. GP(병원)를 찾는 환자 5명 중 1명은 부적절한 주거, 재정 문제, 사별, 고독 등 비의료적 요인에서 비롯된 건강 문제를 안고 온다는 추산이 있다. 소셜 프레스크라이빙은 이런 비의료적 건강 결정 요인을 다루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소셜 프레스크라이빙 전국 확대
2019년 NHS 장기 계획은 2020/21년까지 1000명의 훈련된 링크 워커를 배치하고, 2023/24년까지 90만명 이상을 소셜 프레스크라이빙으로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현재 이 목표는 크게 초과 달성됐다. UCL 연구팀이 2025년 9월 The Lancet Public Health에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2023년 한 해에만 130만명이 병원을 통해 소셜 프레스크라이빙 서비스에 연결됐으며, 제도 시행 첫 5년간 누적 연계 건수는 550만건에 달했다. 2023/24년 기준 잉글랜드 전역 진료소에 배치된 링크 워커는 3600명 이상이다.
이후 2022년부터는 모든 일차 진료 네트워크(PCN)가 소셜 프레스크라이빙을 제공하는 것이 공식 의무가 됐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가
2025년 맨체스터 대학교 등 공동 연구팀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420만명 이상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 링크 워커 제도는 만성질환자와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환자의 경험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고 전했다.
다만 고독 문제에 대한 효과는 아직 입증이 불충분하다. 같은 연구에서 고독과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는 사람들에 대한 효과는 통계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소셜 프레스크라이빙이 고독 해소에 효과적인지 판단하기 위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비용 측면에서도 과제가 있다. 2022/23년 기준 이 제도에 NHS가 투입한 비용은 약 1억3000만 파운드(한화 2580억원)로 추산됐다. 이에 연구팀은 소셜 프레스크라이빙이 전체적으로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한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인가구에게 특히 의미 있는 이유
소셜 프레스크라이빙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고독 해소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실직, 사별, 질병, 이사 등 혼자 사는 사람이 가장 취약해지는 이벤트가 일어나는 순간에 의료 체계가 연결고리가 되어준다는 점이 핵심이다.
영국 정부의 2024/25년 커뮤니티 생활 조사에 따르면, 자주 또는 항상 고독감을 느낀다고 답한 성인은 6.6%였다. 고독 수준은 16~24세(12%), 25~34세(11%), 35~49세(10%)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노인보다 청년 1인가구가 더 고독한 현실이다.
한국에 없는 것
한국의 건강보험 체계는 의료 행위 중심이다. 고독하고 고립된 1인가구를 병원이 감지하고, 링크 워커가 연결하고, 지역 커뮤니티가 제 역할을 해주는 구조는 아직 없다.
최근 서울시가 고립·은둔 청년 지원에서 복지관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있지만, 이것이 의료 체계와 연결되지는 않는다.
영국 소셜 프레스크라이빙의 진짜 의미는 ‘약 대신 사람’이 아니라 ‘의료 체계가 고독을 먼저 알아차리는 창구가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1인가구가 가장 먼저 닿는 공공 접점이 어디인지 고려해, 이 모델의 한국화에 대해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