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80%가 부동산 묶여…"자산 크기보다 인출 가능한 구조가 핵심"
은퇴 후 매달 얼마가 통장에 들어오느냐가 노후 삶의 질을 좌우하는 시대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THE100리포트 Vol.126'은 공식 통계를 바탕으로 노후소득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연금 수급률은 높아졌지만 금액은 여전히 부족하고, 자산은 있어도 쓸 수 있는 돈이 없는 구조적 문제를 볼 수 있다.
연금 받는 사람은 늘었는데, 생활비는 안 된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의 연금 수급률은 90.9%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월평균 수급액은 69만5000원에 그친다. 2025년 5월 고령층 부가조사에서 55~79세의 연금 수령자 월평균 수령액은 86만원이었는데, 남성은 112만원, 여성은 59만원으로 성별 격차도 컸다.
비교 기준이 되는 적정 노후생활비는 훨씬 높다. 국민노후보장패널 10차조사(2024)에 따르면 부부 기준 적정 노후생활비는 월 297만원, 최소 노후생활비도 월 217만원으로 집계됐다. 연금 수령액과의 격차가 최소 130만원 이상 벌어지는 셈이다.
1인가구의 경우 상황은 더 복잡하다. 부양가족연금 가산이나 배우자 연금 합산 효과 없이 단독으로 노후소득을 설계해야 하는 만큼, 연금 외 소득원 확보가 더 절실하다.
자산은 있는데 쓸 돈이 없다
2024년 기준 가구주 65세 이상 고령가구의 순자산은 4억6594만원이다. 수치만 보면 적지 않아 보이지만, 자산의 80.1%가 부동산에 집중돼 있고 저축 비중은 14.2%에 불과하다. 집값이 올라도 매달 생활비가 자동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보고서는 "자산과 현금흐름은 다른 이야기"라고 짚는다. 순자산 규모가 비슷해도 금융자산 비중이 낮으면 생활비 부담이 더 크게 체감된다. 생활비, 비상자금, 의료비 등 현금으로 바로 써야 하는 항목은 금융자산으로 따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 가구로 넓혀봐도 불균형은 뚜렷하다. 2025 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 전체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4억7144만원이지만, 중간값은 2억3860만원으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2025년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37.7%, 지니계수는 0.377이다. 이는 OECD 가입국 중 높은 수준이다.
주된 일자리는 52.9세에 끝난다
은퇴 준비를 정년인 60세 기준으로 짜면 위험하다. 2025년 5월 고령층 부가조사에서 취업 경험자 중 가장 오래 다닌 직장을 이미 그만뒀다는 비율은 69.9%였고, 그만둔 평균 연령은 52.9세였다. 절반 이상이 정년 전에 주된 일자리를 떠났다는 의미다.
퇴직 이유도 본인이 선택한 경우가 드물다. 사업부진·조업중단·휴폐업이 25.0%, 건강 악화가 22.4%, 가족 돌봄이 14.7%로 나타났다. 국민연금 개시 전까지 소득 공백이 생길 수 있는 구간을 별도로 대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은퇴 후 일은 예외가 아니라 현실
2025년 5월 기준 55~79세 고령층의 고용률은 59.5%다. 2024년 65세 이상 고령자의 고용률도 38.2%로 상승세가 이어졌다. 은퇴 후 일은 선택지가 아니라 다수의 일상이 됐다.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응답도 높다. 55~79세 중 69.4%가 장래에도 일하고 싶다고 답했고, 희망 근로 연령 평균은 73.4세였다. 이유는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가 54.4%로 가장 많았고, "일하는 즐거움"이 36.1%로 뒤를 이었다.
노후 일자리가 백지에서 새로 시작된다는 생각도 현실과는 다르다. 지난 1년간 취업경험자 중 71.0%는 최근 일자리가 생애 주된 일자리와 관련 있다고 답했다. 경력의 연장선에서 일자리를 찾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뜻이다. 다만 직업능력개발훈련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비율은 13.7%에 그쳐, 체계적인 준비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한편 노후 일자리 선택 기준에서는 임금보다 근무 조건이 우선이었다. 장래 근로 희망자의 일자리 선택 기준 1순위는 "일의 양과 시간대"(30.3%)였고, 임금수준(20.5%), 계속 근로 가능성(16.3%)이 뒤를 이었다.
"현금흐름 구조 없으면 준비한 게 아니다"
보고서는 노후 준비의 핵심 질문이 "얼마를 모았는가"에서 "소득이 얼마나 오래 이어지는가"로 이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적연금과 퇴직연금이 기본을 받쳐주고, 금융자산이 공백기를 메우며, 근로소득이 길어진 노후를 보완하는 세 가지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구주가 은퇴한 가구의 생활비 충당 현황을 보면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부족하다"는 응답이 37.0%, "매우 부족하다"가 18.6%로, 절반 이상이 생활비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여유 있다"는 응답은 8.6%, "충분히 여유 있다"는 2.9%에 불과했다.
리포트를 작성한 김영정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은 "은퇴는 더 이상 일을 그만두는 한 시점이 아니라, 소득 구조가 바뀌고 삶을 유지하는 리듬을 다시 짜야 하는 긴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후 준비는 결국 현금흐름과 일할 수 있는 힘을 함께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