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지난 13일 앤트로픽에 긴급 명령을 내렸다. 클로드 페이블5(Fable 5)와 미토스5(Mythos 5)에 대한 외국인 접근을 즉시 차단하라는 내용이었다. 사전 통보도, 구체적인 근거 설명도 없었다.
앤트로픽은 외국인 사용자만 선별적으로 막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전 세계 고객의 접근을 한꺼번에 차단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서비스는 사실상 멈추게 됐다.
페이블5는 앤트로픽의 최고 성능 모델인 미토스를 일반 배포용으로 조정한 버전이다. 미토스는 소프트웨어 취약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 회사 스스로도 광범위한 공개 배포를 주저했던 모델이다. 페이블5는 여기에 사이버보안과 생물학 분야의 위험한 응답을 제한하는 가드레일을 추가해 공개됐다.
출시 전에는 미국과 영국 정부, 외부 검증팀이 수천 시간에 걸쳐 안전성을 점검했지만 그 모델은 정부의 명령으로 인해 출시 사흘 만에 시장에서 사라졌다.
표면적인 이유는 '탈옥(Jailbreak)'이었다. 가드레일을 우회하는 기법이 발견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앤트로픽의 입장은 달랐다. 해당 기법으로 가능한 것은 이미 알려진 취약점 몇 가지를 찾아내는 수준이며, 비슷한 작업은 OpenAI GPT-5.5 등 다른 최신 모델에서도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같은 수준의 기능을 가진 다른 모델은 그대로 두면서 페이블5만 회수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최근의 정치적 흐름까지 겹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2월 군 관련 계약 협상이 결렬된 이후 연방기관의 앤트로픽 AI 사용을 전면 중단시켰다. 이번 수출 통제가 그 갈등의 연장선인지, 탈옥 문제가 실제 이유였는지, 혹은 명분에 불과했는지는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앤트로픽은 이달 초 '프로젝트 글래스윙(Project Glasswing)' 참여 대상을 15개국 150여 개 기관으로 확대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SK텔레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접근 권한을 받은 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미국 정부의 명령 한 장으로 해당 권한은 모두 중단됐다. 실제 활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앤트로픽과 소통 중"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았다.
한국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앤트로픽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이번 결정에서 아무런 예외가 되지 못했다.
최근 다시 '소버린 AI' 논의가 힘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융과 국방, 행정 같은 핵심 인프라가 해외 AI 모델에 깊이 의존한 상태에서 접근 자체가 차단된다면 이를 대체하거나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번에는 접근권이 막혔지만, 다음에는 다른 조건이 붙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한편 한국 정부는 2025년부터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이번 사태가 보여준 것은 개발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의존 구조의 문제다.
AI 주권은 단순히 자체 모델을 개발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태는 AI 서비스가 언제든 국가 안보와 통상 정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과거 희토류 수출 제한이 글로벌 산업 공급망을 흔들었다면, 이제는 AI 모델과 컴퓨팅 자원, 접근권이 새로운 전략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AI가 '제2의 희토류'가 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AI 경쟁력은 누가 더 뛰어난 모델을 만들었느냐보다, 누가 그 기술과 접근권을 통제하느냐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