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잘 만나야 성공한다”는 말이 상식처럼 굳어진 시대다. 하지만 별다른 배경 없이 창업해 조 단위 자산가 반열에 오른 이들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하다.
기존 산업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1. 에이피알 김병훈: ‘K뷰티 판’을 다시 짠 창업가
1988년생 김병훈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는 대학 재학 시절 가상 착장 서비스와 데이팅 앱을 만들다 2014년 이주광 전 공동대표와 함께 회사를 창업했다. 이후 화장품 브랜드 ‘메디큐브’와 뷰티 디바이스 ‘에이지알(AGE-R)’을 앞세워 회사를 키웠다. 에이피알은 2024년 2월에는 코스피에 상장하며 주목받았다.
성장 속도도 가파르다. 에이피알의 2025년 연간 매출은 1조5000억원을 넘어섰고, 2026년 1분기에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매출 비중이 빠르게 커졌고, 메디큐브는 아마존 내 K뷰티 대표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김 대표는 2025년 한국CXO연구소가 집계한 국내 주식평가액 상위 창업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2026년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기업’ 리스트에 국내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포함됐다. 알파벳, 엔비디아, 메타, 스페이스X와 함께 ‘거장(Titans)’ 부문에 선정됐으며, 국내 뷰티 기업으로는 첫 사례다.
2. 구다이글로벌 천주혁: 5000만원으로 시작한 ‘K뷰티 브랜드 하우스’
1987년생 천주혁 천주혁 구다이글로벌 대표는 2015년 자본금 5000만원으로 회사를 창업하고, 초기에는 한국 화장품을 해외에 유통하는 소규모 사업으로 시작했다.
전환점은 ‘조선미녀(Beauty of Joseon)’였다. 한방 원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이 미국 시장에서 입소문을 타며 급성장했고, 이후 티르티르·스킨1004·라카·서린컴퍼니 등 K뷰티 브랜드 투자를 확대했다. 업계에서는 구다이글로벌을 ‘K뷰티 브랜드 하우스’ 전략의 대표 사례로 평가한다.
구다이글로벌은 현재 IPO를 준비 중이며, 시장에서는 기업가치가 10조원 안팎으로 거론된다.
3. 무신사 조만호: 신발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패션 플랫폼
1983년생 조만호 조만호 무신사 창업주는 2001년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무진장 신발 사진 많은 곳’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이후 이를 패션 플랫폼으로 확장했고, 자체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까지 키워냈다.
무신사의 2025년 연결 매출은 약 1조4679억원, 영업이익은 약 1405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패션 플랫폼 가운데서는 가장 큰 규모로, 전통 패션 브랜드들도 무신사에 입점을 해 매출을 올리는 시장 존재감을 가지게 됐다. 무신사도 현재 IPO를 추진 중이며 국내외 상장 가능성이 함께 거론된다.
조 대표는 취향 기반 커뮤니티를 거대한 플랫폼 기업으로 키운 사례로 평가받는다. 단순 유통이 아니라 브랜드·콘텐츠·오프라인까지 연결한 점이 무신사의 차별점으로 꼽힌다.
4. 두나무 송치형: 가상자산으로 재벌 반열에 오른 첫 사례
1979년생 송치형 두나무 회장은 충남과학고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경제학 복수전공 출신이다. 병역특례로 다날에서 휴대전화 불법 결제 차단 시스템을 개발한 뒤 2012년 두나무를 창업했다. 카카오로부터 초기 투자를 유치해 ‘증권플러스 포 카카오’를 선보였고, 2017년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출범시키며 국내 최대 거래소로 키웠다.
두나무는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공시대상기업집단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지정된 사례이자, 가상자산 기업이 대기업집단에 포함된 첫 사례였다.
현재 두나무는 네이버파이낸셜과의 포괄적 주식교환을 추진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거래가 완료되면 두나무는 네이버파이낸셜 산하로 편입된다. 주식교환비율은 네이버파이낸셜 1주당 두나무 2.54주 수준으로 알려졌으며, 이번 거래에서 두나무 기업가치는 약 15조원으로 평가됐다.
지분 25.5%를 보유한 송 회장의 지분가치는 약 4조원대로 거론된다.
5. 시프트업 김형태: 일러스트레이터 출신이 만든 게임 흥행사
1978년생 김형태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는 중앙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중퇴한 뒤 게임업계에 입문했다. 소프트맥스와 엔씨소프트를 거쳐 2013년 시프트업을 창업했다.
시프트업의 전환점은 2022년 출시한 ‘승리의 여신: 니케’였다. 글로벌 흥행에 성공하며 시프트업은 단숨에 국내 대표 서브컬처 게임사로 떠올랐다.
2024년 코스피 상장 당시 시가총액은 한때 4조원을 넘겼고, 게임업계 주요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다만 이후 주가는 공모가 대비 하락한 상태다. 시장에서는 차기작 공백과 성장 모멘텀 둔화를 주요 원인으로 본다.
이 다섯 사람의 성장 경로는 서로 다르다. 하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물려받은 산업이 아니라, 기존 대기업이 주목하지 않던 시장에서 기회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K뷰티, 패션 플랫폼, 가상자산, 서브컬처 게임은 모두 201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재벌의 핵심 사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분야다. “계층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시대에도 새로운 사다리는 전혀 다른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